[우울증 환자 생존기] 안녕! 고마와!
안녕! 오늘 아침에도 찾아왔구나. 생각나? 내가 아주 오래전 편지를 쓰면서 살아남은 거. 무수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편지를 쓰고 쓰고 또 쓰면서 살아남았지. 그런데 너에게 편지를 쓴 건 어제가 처음인 것 같아. 그리고 오늘이 두번째.
고마와. 어제 내 말을 들어줘서. 덕분에 어제 하루도 잘 보냈어. 조금 기다려달라는 말이 서운했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잘 기다려줘서 고마와. 있잖아 어제 너에게 편지를 쓰고 나서 조금 편안해졌어. 어쩌면 너랑 정말 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너는 어땠니? 하루종일 포스터를 붙이면서 너를 가끔 맞이했어. 그래도 괜찮았어.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어제는 택배가 어마무시 왔다. 그 중에는 과일야채 주스를 만들 재료와 기계도 있었어. 한의원에서는 그러더라. 내가 너무 체력이 안 되서 한약을 먹고 싶은데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고 하니까 약을 다 끊고 먹어야 한데. 그런데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불안한거야. 생각해보니 한약을 먹으면서 두드러기는 많이 없어졌는데 그 때 찾아오던 공황증세는 없어지지 않았거든. 그래서 포기했어. 몸에 좋은 걸 먹어야 할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체력도 너무 달려서 과일야채 주스를 먹어보려고. 운동 선생님도 추천하셨거든. 나는 우리 운동 선생님이 좋아. 경제력만 되면 매일 같이 하고 싶어. (숙제 안 해도 되니까? ^^)
너는 어제 하루가 어땠니? 나는 어제 하루도 쉽지는 않았어. 오늘 아침에도 샤워하다가 중간에 그만 두고 그냥 쓰러지고 싶더라. 너에게 착붙하려는 내가 보였어. 그런데 나 독립해야 하잖아. 너도 나도.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거잖아. 그래서 힘겹게 샤워를 마쳤어. 어제는 교리공부를 갔지.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데. 가치를 두는 것에서 재물이나 권력이나 다른 것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데. 어쩌면 너는 나의 종교였을지도 몰라. 너는 나를 힘들게 했지만, 너 만큼 나를 돌아보고 생각하게 한 것도 없으니까. 어쩌면 너도 내 인생의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너가 없었다면 내가 그렇게 나를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 없었을지도 몰라. 고마와.
홍보는 하고 있는데, 모집 인원이 많이 늘지는 않아. 아주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모집인원이 어느정도 늘기 전까지는 계속 홍보방법을 모색하며 일을 해야해서 휴직을 못할 수도 있어. 그래도 기다려줄 수 있겠어? 나랑 같이 있고 싶으면 좀 도와줘. 모집 인원이 빨리 늘어날 수 있도록.
남편은 어떤 마음일까? 예전에 여러가지 우울증 책을 읽었어. 어떤 책은 동생이 자살하고 남은 언니가 유가족의 입장에서 쓴 책이었고, 어떤 책은 우울증 환자 작가가 상담자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쓴 책이었어. 두번째 책은 내가 결혼할 무렵에 읽었는데 남편에게도 읽어보라고 했거든. 나를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될지도 몰라서. 그런데 좀 두려웠어. 감기처럼 남편에게 우울이 옮길까봐. 다행히도 신랑은 면역력이 좋았고 재미가 없었데. 안심했어.
너와 동행하는 걸 이해받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세상 모든 일이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든 남편도 나를 온전히 알기는 어려울 거고, 나 역시 남편의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다만, 남편도 편안해지면 좋겠어. 그러면 내가 편안해야겠지? 너와 잘 지내고 싶어.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만큼.
오늘 하루도 일찍 시작해서 조금 피곤할 것 같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해. 어쩌면 나의 친구, 나의 동반자, 나의 선생님. 나의 우울,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