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사람을 깨운다

[우울증 환자 생존기] 엄마한테 화를 냈다 약 먹는게 쉽지 않다

by 마담 J

엄마가 아프다. 암치료를 했고 후속약을 먹고 있다. 신경정신과 약도 먹는다. 항암치료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져서 치매초기 약을 먹기 시작했다. 1년이다. 그런데 약이 몇 백알씩 남아있다는 거다. 그래서 당장 전화해서화를 냈다. 힘들게 자식들이 병원 데리고 다니면서 약도 먹이고 하는데 왜 안 챙겨 먹냐고. 아빠가 아침 저녁으로 약을 챙겨줘도 백 번씩 말해야 겨우 먹는다. 본인이 무슨 약을 먹는지도 모른채 먹는다. 밥도 잘 안 먹는다. 속이 안 좋고 안 먹힌단다. 속이 터진다. 열불이 난다.


오전에 컨디션이 너무 안 좋고 공황이 와서 오후 반차를 내고 집에와서 수면제를 3알이나 먹고 잤는데 겨우 2시간 잤다. 좀 누워있다가 언니에게 전화했는데 엄마 상황을 알게 되어서 당장 전화를 해서 한참을 혼냈다. 치매는 돌아갈 수 없는 병이라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먹으라고.


열불이 나니까 몸에 에너지가 돈다. 참 나..


약을 챙겨먹는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나도 투약을 3년 넘게 하면서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건지 울적하고 병원가기도 싫고, 약도 먹기 싫고 그런 적이 있었다. 엄마를 이해한다. 이해하면서도 열불이 난다. 열불이 나니까 정신이 깬다. 분노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무언가에 분노할 수 있다는 건 아직 에너지가 있다는 뜻이다. 울적할 때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에 분노도 일어나지 않는다. 박진영과 하이브 수장이 나와서 자신의 성공 동기부여는 분노라는 말을 했다는 짤을 봤다.


나도 일을 할 때, 분노 때문에 일을 더 치열하게 한 것 같기도 하다. 사회에 대한 분노, 조직에 대한 분노, 상사에 대한 분노. 분노하면서 문제를 개선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분노는 때로 좋은 사인이다.


가족이 아프면 분노가 생긴다. 왜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왜 그걸 몰랐을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서 방법을 찾고 행동한다. 요즘 내 일에서는 분노가 없다. 아. 있다. 문화정책에서 작은 도서관 예산을 날린 일, 사람들이 모이는 예산에는 다 손을 대는 일,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가 아니라 그저 축제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일차원적인 기획에 대한 분노가 있다.


좋은 기획에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에도 분노가 생긴다. 지역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자기에게 이익이 도지 않을 것 같은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가 생긴다. 어떻게든 더 알려야 하는데 이 분노를 어떻게 잘 활용할지 고민이 많다.


엄마에게 화를 낸 걸, 내가 영세를 받았으면 고해성사를 해야겠지. 하지만 그건 못 하니까 오늘 저녁에 엄마한테 가서는 좀 더 부드럽게 한 마디 더 해야겠다. 욱하지 말아야 하는데. 엄마는 자신이 약을 잘 챙겨먹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걸 아니까 거짓말하니까 욱하게 된다. 그나마 아빠가 있어서 엄마 약을 챙겨준지 6개월이다. 약을 먹으면 바로 좋아져야 되는데 왜 저렇게 안 좋아지나 보니 약을 제대로 안 챙겨먹어서 그런 거였다.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는 거다. 화가 가라앉지를 않는다.


한편으로는 나를 돌아본다. 내 남편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 약도 주말에는 먹지 않고 약 먹기 싫다고 하고 상담가기 싫다고 하고. 그 엄마에 그 딸이네. 그 동안의 남편에게 미안하다. 엄마처럼 하지 말고 나는 내 약 잘 챙겨먹어야지. 자해도 하지 말고, 자살도 하지 말고.


울증과 함께 자해충동이 찾아왔다. 참는게 쉽지가 않다. 약으로 버티고 있다. 우울증 환자가 투약을 시작했다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약을 잘 챙겨먹어야 한다. 자기 상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자기 상황에 맞는 약을 챙겨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 밥 세끼 먹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는데 하루 세번 약 챙겨먹는 건 쉽겠나. 그래도 챙겨 먹어야 한다. 투약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자기관리다. 나는 엄마에게 화낼 자격이 있나 생각해본다. 요즘은 좀 있는 것 같아서 자신있게 화를 냈지만 나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나도 정신 차려야겠다.

keyword
이전 21화오늘의 우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