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를 먹었어요

[우울증 환자 생존기] 좋아하는 걸 안다는 것

by 마담 J

뭐든 좋은 걸 찾아야 한다. 오늘도 죽음을 생각했다. 그저 평범하게 사랑이 산책을 시키고 있는 와중이었다.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3키로 깨발랄 3살 강아지를 낙엽을 밟으며 경쾌하게 걷다가 갑자기 죽고 싶어졌다. 맥락이 없다.


오늘은 회사에 가지 않았다. 못 갔다. 어제 죽어버린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가 워크숍이 생각만큼 빠른 속도로 모집이 되지 않아서 다음주에 휴직을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하루에 다섯번씩 신청 사이트에 들어간다. 한 개씩 올라가는 숫자에 조바심이 난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다. 일을 안 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그래도 컨디션이 안 좋으니 낮잠도 자고, 신랑이 뭐 좀 챙겨먹으라고 연락이 와서 단백질 도시락을 먹고 또 잤다. 오후에 고수 1kg이 왔다. 충동적으로 시켰다. 고수를 좋아한다. 남편은 안 좋아하지만. 어린 고수가 서비스로 와서 바로 고수와 두부샐러드를 만들어먹었다. 요즘 아로마와 냄새에 민감해서 그런지 고수를 먹고 나니 기운이 났다. 기분도 좋아졌다. 성경 필사를 시작했는데 사랑이가 다리를 툭툭 친다. 나가자는 소리다. 그 전까지는 나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는데 고수 먹고 기분도 컨디션도 좋아져서인지 산책을 나갔다. 언니한테 갔다. 가서 맛있는 커피와 케잌도 얻어먹고 에코백도 선물 받고 주황색 미니 장미도 샀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아는게 중요하다.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와중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걸 알고 있는 건 중요한 일이다. 고수를 먹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뭐든 좋아하는 걸 찾는게 중요하다는 거다. 어떤 사람이 세바시에서 자기가 우울증을 이길 수 있었던 것 햇빛 쐬고 요거트를 열심히 먹어서 장내 유익균이 많아져서라고 하더라. 그렇게 다 우울증이 개선되면 얼마나 좋을까. 장은 뇌와 같아서 건강하게 유지하는게 중요하다는 건 안다. 그래서 나도 유산균이며 요거트며 녹즙을 먹는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제는 사랑이가 내가 자해한 손목을 핧아줬다. 원래 코를 엄청 빠는 습관이 있는데 갑자기 내 손목을 핧았다. 눈물 날 뻔 했다. 푸들은 집사의 마음에 공감하는 능력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감정이 요동칠 때 마다 그 녀석 눈치를 많이 본다. 남편 다음으로.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라는 책의 작가가 강아지를 키우는데 자기가 나쁜 생각을 할 때마다 강아지를 보면서 많이 위기를 극복했다고 하는 방송을 봤다. 이해가 갔다. 사랑이를 산책시키다가 사랑이만 두고 나 혼자 차로 뛰어들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빨간 줄이 간 속목을 핧아주는 그 부드럽고 따뜻한 혓바닥을 느끼고 어떻게 나쁜 생각을 하겠나.


좋아하는 건 매번 바뀐다. 한 때는 소설책을 미친듯이 읽었고, 한 때는 공연을, 한 때는 전시를 미친듯이 봤다. 요즘은 모든 향기 나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 집에 꽃이 있는 풍경도 좋다. 집에 컵이 많은데 컵도 사고 싶다. 예쁜 컵으로. 오늘 카페랑 선물가게에 가보고 나도 가게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은 예쁜 것들을 파는 선물가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순네 물건을 파는 것도 좋겠다. 작게 시작해보고 싶다. 작가들 검색을 해 보고 선물 가게를 차려볼까?


뭐라고 하고 싶은게 있는 건 좋은 신호다. 어제는 정신과에 약을 받으러 갔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갑상선 호르몬 검사와 종합검진 권유를 받았다. 정말 정신적인 문제인지, 혹시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알아봤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또 한번 휴직 권고를 받았다. 일이 다 무슨 소용이냐며. 자해는 하지 말라며. 남편이 얼마나 힘들어하겠냐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정말 선물가게를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사람들, 예술가들, 작품들 선별해서 모으는 작업이니 나에게 잘 맞는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수를 1kg이나 사서 저걸 언제 다 먹나 싶기도 한데, 금방 먹을 것도 같다. 이렇게 기분이 달라질 정도라면 매일이라도 먹겠다. 맥락없이 죽고 싶은 사람치고는 살려고 참 여러가지를 시도하고 있다. 아로마를 항상 옆에다 켜놓고 기분을 전환하고 나에게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하루를 잘 마쳤다. 회사를 쉰 보람이 있다. 컨디션이 올라왔으니까. 내일은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잘 할 수 있겠지?


또 좋아하는 걸 찾아야겠다. 오늘도 귀엽다는 말을 백번 들은 사랑이와 행복하게 잘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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