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뇌의 주름이 쭈글쭈글해지는 시간
남편과 컨디션 일기를 공유하는 것 말고, 내 브런치 글도 읽고 있다. 처음에는 공개하지 않았는데 어느정도 글이 쌓이고 나서 공개했다. 벌써 조회수가 1,000회를 넘었다. 신기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내 글을 읽고 있는 게. 그 만큼 나처럼 우울한 사람들이 많은 거겠지?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들에게도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도 싶다. 남편이 말했다. '그럼 나는 우울증 환자와 사는 남편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우울증 환자도 옆에서 같이 생존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으니까. 남편이 정말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나에게 언제나 좋은 경험이 되어 주었다. 편지와 일기로 살아남았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글을 못 쓴지 몇 년만에 남편의 권유로 7월부터 시작한 컨디션 일기가 발판이 되어 브런치 글까지 쓰게 되었다. 글을 쓰면 몸의 많은 감각이 깨어나는 기분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 잘 써야 될 것도 없다. 그냥 쓴다.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없으면 못 사는 사람으로서 글쓰기는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행위다. 글은 머리로만 쓰는게 아니라 온 몸으로 쓰는 것 같다. 물론 머리를 가장 많이 쓰겠지만. 그래서 평평해진 뇌가 주름이 쭈글쭈글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이미지를 상상하면 웃기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다 쓴 글을 보면 이런 글을 내가 정말 썼나 싶을 때도 있다. (특히 보고서가 그렇다. 예전에 쓴 연구 보고서나 논문을 보면 내가 어디서 이런 말을 주워들었을까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우울증 환자에게 권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자기의 일대기를 써보는 거다. 자기의 인생을, 일대기를 쭈욱 써보는 거다. 그러면 자기를 알아가는데 좋은 방법이 된단다. 나는 대신 편지를 썼다.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무수히 썼다. (편지와 카드를 많이 보내기도 했다.) 어쨌든 글쓰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를 뭔가 생각하고 뱉어내게 해 주니까. 나는 관찰 일기를 쓰면서 글 쓰기 연습을 하고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는데 좋은 것 같다.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다. 그런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단어 하나를 쓰는 것 정도는 시도해봐도 좋겠다.
글쓰기를 하면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는 기분이다. 내가 느끼는 거, 생각하는 거를 알 수 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도 글을 쓰다가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무 글이나 쓰자. 내가 경연대회 나가는 것도 아니고 엄청 잘 써야 할 필요도 없다. 때론 두서도 없고 말도 안 되는 글을 쓸 때도 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약 먹는 거 처럼 글쓰기를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나도 브런치 글 하나를 한번에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글 썼다가 저 글 썼다가. 그래도 뭐라도 쓰기를 하고 마무리를 한다. 약 먹는 거처럼 시간이 되면 아주 조금이라도 쓰다가 보면 감각이 일어난다. 나는 일기를 여러가지를 쓴다. 일단 관찰일기. 그 날의 일과 내 마음, 그걸 종합점수로 매기고, 감사일기, 칭찬일기, 반성일기, 그 날의 내 생각의 주제를 쓴다. 그리고 꿈 일기를 쓴다. 감사일기와 칭찬일기는 하루에 세 가지씩, 반성일기는 한 가지를 쓴다. 쓰는데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일단 거리를 만들어야 하니까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다. 주로 남편과 가족, 동료들에 대한 감사일기가 주가 되고 하루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본낸 나를 감사하고 칭찬하는 것으로 주도 마무리한다. 반성일기의 주는 '그만 먹자와 운동하자'인데 계속 되는 걸로 봐서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효과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게 정해진 것들을 쓰는 것 만으로도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도 일기 쓰기 싫은 날이 있다. 나는 구글 드라이브에 쓰고 남편과 공유하는데, '이 시간즈음에 열었음'하고 표기가 된다. 자기 전에 항상 쓰니까. 어제도 일기 쓰기가 싫었는데 일단 컴퓨터를 키고 딴 짓을 하다가 눈을 거의 감고 썼다.
글쓰기를 잘 하고 못 하고는 상관이 없다. 그냥 쓰자. 살아있는 동안에는 뇌를 쭈글쭈글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이 새로운 일을 하면 시냅스 연결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글쓰기는 매일 다른 내용을 쓰니까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참.. 죽고 싶은 사람치고는 치열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