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합니다

[문화기획자의 삶] 당신에게는 동료가 필요합니다. 좋은 동료가.

by 마담 J

나는 학교 다닐 때 아싸였다. 공부를 좀 하는 모범생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또 완전 모범생은 아닌. 지각도 하고 땡땡이도 치고 결석도 하면서도 나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도, 어쨌든 갈등이 싫어서 규율을 왠만하면 깨지않는. 우리 때만 해도 일진은 학교에 한명씩 대표가 있었고, 논다는 아이들도 아이들을 괴롭히기 보다 정말 밖에서 진창 놀고 학교에서 자고 모험담을 이야기해주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과 앞뒤로 앉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아이들과도 잘 지냈다.


좋은 예술작품을 보면서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는 꿈을 키웠고, 꿈을 이뤘다. 하지만 현실은 예술작품이 아니다. 문화재단에서 10년, 20년 넘게 일하면서 자기 돈 주고, 공짜라도 일부러라도 공연을 보거나 전시를 보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냥 직장인거다. 그래서 '문화예술계'라고 생각하고 문화재단에 입사하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웬만한 회사보다 문화예술에 문외한인 사람이 많은 곳이니까. 덕질이 기본인 개발분야나 이름있는 회사의 회사원보다 더 덕질이 신기한 곳이니까. 아직도 생각난다. 태어나서 세종문화회관에 처음 와본다던 40대 회사 선배, 결국 뮤지컬 보다가 중간에 집에 가버렸다. 그런 곳이다. 그런 사람이 80%인 곳. 기존에 문예회관을 관리하던 시설관리공단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문화예술계가 익숙할 이유가 없다. 그들에게는 공영주차장, 스포츠시설과 다를바 없는 공연장이라는 시설일 뿐이니까.


요즘 새로 들어오는 젊은 직원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 문화예술이나 기획에 관심이 없다.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어쨌든 다른 회사보다는 문턱이 낮은 공공기관이고, 안정적이고, 집에서 가까운 어디든 있는 곳이니까 '회사'로 들어온다. '문화기획'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들어오는 '기획자' 직원을 찾기가 정말 힘들다. 한 마디로 '도전'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들어오는 직원이 거의 없다는 뜻이고, 그만큼 문화재단은 '도전'을 하지 않는 조직이었다는 뜻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문화예술은 '도전' 그 자체여야 하는데. 사회에 문제가 생길 때 가장 앞뒤 안 가리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예술가, 기획자이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조직이 문화재단이어야 하는데, 수많은 도전적인 과제를 만들어내고 해내야 하는데, 그런 걸 보기 어렵다. 도전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도전을 하려면 내부적으로 많은 싸움 끝에 도전을 도전해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인데 지친다.


제일 지치는 건 '기획'에 대한 비전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적어도 도전을 해보도록 내버려두는 사람, 더 좋다면 그 도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동료와 상사를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지. 아니면 너무 외롭고, 너무 오래 외로우면 병에 걸린다. 요즘은 적어도 '기획'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재단'의 미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와 상사가 생겨서 숨 쉴 틈이 생겼다.


문화재단에 입사했다면 일단 '이야기 나눌 사람'을 먼저 찾아보라. 그래야 그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외로움은 독이다. 문화기획을 하고 싶다면 덕질도 '좀' 해보고, 사회 다방면의 문제에 관심도 많고 문제의식도 많은 동료를 찾아보라. 당신의 회사 생활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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