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에는 '경영자'가 필요하다

[문화기획자의 삶]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있는

by 마담 J

지역 문화재단은 지자체의 출자출연기관이다. 적게는 1백만원, 보통은 1천만원 정도를 지자체가 출연하고, 조례에 따라 설립/운영된다. 매해 의회의 예산 심의과정을 거쳐서 예산을 확정받고 1년 단위의 회계연도에 맞추어 운영한다. 지역 문화재단이 처음 만들어진 건 경기문화재단이었다. 기초단위에서는 부천문화재단이 가장 처음 설립되었고, 이후 지자체 선거 공약에 자주 포함되며 약 30년간 160개에 가까운 문화재단이 만들어졌다. 문화예술지원의 '팔길이 원칙'에 기초하여 문화재단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조하며 등장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산하기관'으로서의 의무와 책임, 속박에 점점 갇혀가는 곳들이 많다. '문화예술'의 가치보다 '정치적 필요'에 의한 역할이 중요한 '정무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어쨌든 공공기관으로서 문화예술에 관심있는 젊은이들이 오고싶어하는 직장이라고 한다.


문화재단 대표로는 예술경영이나 기획자가 오기도 하고, 예술가, 평론가 등 업계 사람이 오기도 하지만, 은퇴한 공무원, 시의원 등이 오는 경우도 많다. 기초에서는 지역 인사가 오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지역 정권 교체에 따라서 대표들이 바뀌고, 내부 승진라인이 바뀌기도 한다. 호떡집이다. 어쨌든 예산과 인사권을 가진 지방정부와 의회의 눈치를 안 볼 수 없고, 그러다 보면 문화재단이 '의전기구'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문화재단은 시민의 문화향유와 창의력 향상을 돕고 삶의 질을 높이는 미션을 모두 가지고 있다. 예술가 지원도 해야한다. 문화재단의 목적은 예술가와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모든 미션을 제끼고 의전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가 제1 목적이 되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시장과 합이 맞고, 대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깨인 사람이 대표로 온다면 다행이지만, 시장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의전을 하기 위해서 오는 대표가 있다면 최악이다.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돈으로 사람을 많이 모아서 시장을 한번 더 소개할까만 생각하고, 문화적/예술적 비전이 없이 사업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임직원에게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올라가는 기획안이 정치적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지만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최악이다.


대부분의 지역 문화재단은 지역 축제를 담당한다. 축제에는 돈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불꽃놀이나 드론쇼, 유명가수들을 불러모으고, 야외무대와 부스를 설치하는 2박 3일 내외의 축제에 3~6억까지 때려붓는다. 그런데, 예술가에게 돌아가는 지원사업의 금액은 몇 백만원에서 규모가 아주 커야 이천만원이다. 그리고 잘 하는 예술가가 연속해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이 사람은 '예술가냐, 사업가냐'라는 소리가 나온다. 지역에 골고루 나눠줘야 하는데, 한 사람의 비중이 커지는 것처럼 보이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게 맞는 말일까?


지역 안에서 예술가가 자리잡고 꾸준히 작업을 하기 위해서도 지원이 필요하지만, 꾸준히 작업을 하다보면 당연히 해당 예술가의 역할비중이 높아지고, 점점 더 의미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더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는데 그놈의 '자생력' 집착 때문에 운신의 폭이 더 줄어들기도 한다. 시민들에게는 좋은 예술을 더 많이 접할 권리가 있고, 예술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현장은 쉽지 않다. 성격이 같지 않은 사업에 같은 예술가가 참여하는 것을 기초단위 문화재단에서 제약하려면, 그만큼 지역의 예술가 집단의 다야성이 풍성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물론 한 때 '지원금 사냥꾼' 혹은 '업자'라는 말이 돌 만큼,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모든 지원사업에서 독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래도 몇 천에서 억 단위를 받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1년에 몇 백만원, 고작 1천만원대 사업 하나로 그런 배제원칙을 말하기 전에 예술가의 '직업으로서의 생존'에 대한 생각도 해봐야하지 않을까?


문화재단 경력이 10~20년을 넘어서는 사람들의 공부모임에서 '조직문화'와 '인적자원 관리'에 대한 주제가 다뤄졌다. 조직문화 책을 읽으면 의사소통, 공간,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공통으로 나온다. 리더십에 나오는 이야기는 소위 뻔한 이야기다. 경청하고, 비전을 보이며, 실패를 격려하고, 공정하라고. 그만큼 현실에는 그 '뻔한' 리더가 없다는 뜻이다. 읽다 보면 헛웃음이 난다. 이렇게 수백권에서 수십년을 같은 이야기를 해도 현실에는 왜 그런 리더가 없나. 더구나 이 문화예술계에는 왜 더 없나. 도대체 '경영'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오기는 하는 걸까. 그래서 우리는 경영을 공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기획이 아니라.


많은 지역 재단의 예산이 너덜너덜해지고 있다. 국가재정, 지방재정이 안 좋으니 출연금이 많이 나올 수가 없고,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수가 없으며, 기존의 사업도 줄여야 할 판이다. 사업비가 줄면, 인건비 비율이 올라가고 그 다음 수순은 조직정비다. 누가 살아남게 될까?


가끔 보면 문화재단은 쉬운 곳이라 생각하고 부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결코 쉬운 곳이 아니다. 수십명, 많게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이다. 경영자가 필요하다. 예산이 줄어드는 만큼 비즈니스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어떻게 투자해서 돈을 만들어내고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계획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조직문화랄 것이 없는 이런 공조직, 심지어 점점 공무원화되어가는 공조직에 필요한 건 어쩌면 점점 더 어려운 시장과 정책에서 살아남는 감각을 가진 경영자다.


후배들을 생각하면 미안해진다. 지난 2-30년간 문화예술경영이라는 이름으로 달려온 길을 돌아보니, 우리는 과연 전문가였던가? 라는 의문이 들면서 앞으로 2-30년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한 선생님이 카톡방에 글을 남기셨다. 문화정책이 전방위적으로 뭔가 효과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20년은 걸리는데 특히 올해 예산을 보면 정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이지가 않는다고. 특히 미래인력에 대한 비전이 없다고. 10년 후에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맥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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