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 기획자가 바라는 리더

[문화기획자의 삶] 경영자가 되어줘!

by 마담 J

세상에는 여러종류의 리더가 있다.


내가 프리랜서일 때 함께 일했던 팀장님이 사정을 해서 어떤 기관에 입사시험을 본 적이 있다. 면접도 봤다. 심지어 내 팀을 꾸려서 들어와도 좋다고까지 했었다. 면접을 가서 보니 공공기관의 문화예술교육 지원 및 기획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탈락하고 함께 면접봤던 박사님이 선발되었다. 젊고 혈기가 넘쳤던 나는 당황스럽고 화도 났다. 조직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사람을 여러번의 설득 끝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까지 보게하고는 떨어트린거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추천한 사람 마음 속 내정자는 나였지만, 인사라는게 마음대로, 내정자가 되지 않는 경우도 꽤 많고 또 그게 맞는 거기도 하다.


다만, 아직까지 내가 이 경험을 최악중 하나로 꼽는 이유는 내가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해당 조직에서 일할 때 '양반다리'를 하고 업무를 보는 걸 본 상급자가 '근무태도'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안 된다고 했다는 거였다. (지금도 양반다리를 하고 쓰고 있다. 다리가 짧다. 책상과 의자 높이가 잘 맞지 않는다.) 그 상급자는 면접에 들어온 사람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훓어보고 다녔고, 내선 전화를 차분하게 받으면 "ㅇㅇ씨! 솔톤 몰라요? 우리는 서비스 조직인데 그렇게 전화를 받으면 되겠어요?" 하던 사람이었다. 어쨌든 채용 불가 사유치고는 참 쪼잔하다 싶었고, 그런 의견이 먹히는 조직이라는 것도 기가 막혔다. (사실 나를 추천했던 팀장님을 꽤 오랫동안 집요하게 불링하던 상급자였고, 팀장님은 그래서 나를 반대한 것 같다고 했다. 좀 특이하기는 했지만, 일 잘하던 팀장은 자기 때문이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건 팀장님이 미안할 일이 아니다.)


업계가 좁아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는 지역 문화재단 대표가 되었고, 나는 다른 문화재단의 직원이 되었다. 나는 몇 년 전의 나에게 '고맙다! 잘 했어!'라고 스스로를 몇 번이나 부둥부둥해줬다. 그가 대표로 온 문화재단에 내가 팀장 제안을 받고 갈 뻔했었기 때문이다. 그를 내 리더로 모셔야 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 재단 팀장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았을 때, 최종적으로 거절한 이유도 기가 막히다. 당시 대표가 신혼인 내게 자신이 재임하는 2년 동안 아이를 갖지 말라고 했다. 그것이 조건이었다. 나는 아이 가질 생각도 없었다. 나이나, 나의 건강상태나 주시면 감사하게 받겠지만 갖기 위해서 노력은 안 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그런데, 채용 조건으로 '임신은 안 된다'는 리더한테 가는 게 내 윤리세계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요구였다. 그 대표를 오래 모신 사람은 "그가 리더로서 그래도 무난한 편이니, 만약 그 사람도 못 견딘다면 견딜 수 있는 대표가 몇 없을거다"며 긍정적인 검토를 제안했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희롱하는 사람, 책임 안지는 사람, 부하직원 뒷말하는 사람, 뽀찌를 원하는 사람, 술 강권하는 사람 등등 많은 리더를 문화재단에서 만났다. 그렇다. 문화재단도 조직이다. 세상사 요지경이라 온갖 사람들이 다 온다. 새로운 도전을 무서워하는 사람, 위에 정치권 눈치만 보고 의전만 챙기는 사람, 조직원보다 외부 시선이 무서운 사람,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명성과 실재는 다르다. 유명한 사람이라고, 평판이 좋다고, 경력이 굵직하다고 다 믿으면 안 된다. 물론 업계에 좋은 리더들도 있다. 자기 손에 피 묻혀가며 조직 심페 소생술 하는 사람, 직원들을 끊임없이 일하게 하면서 성장시키는 사람, 조직인만큼 수직관계를 타파할 수야 없지만 의사소통에서 민주적인 방식을 도입하는 사람, 직원 의견을 허투루 듣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복불복이고, 다만 나는 주변인들의 평가에 따르면 리더복이 대체로 없었달까?


문화재단에서 갖가지 리더를 겪어본 경험에 비우어 볼때, 문화재단 리더는 문화, 인문, 사회적 소양과 조직 경영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문화예술 기획, 행정, 연구자나 예술가, 정치가, 공무원 등 다양한 경력의 리더를 겪고 난 결론은 차라리 '사업가' 경험을 가진 '전문 경영자'가 나을 수도 있다는 거다. 문화재단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정확하게는 문화예술에 대한 환상, 이상과 동경이 아니라 문화예술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문제의식과 시대흐름을 읽고, 조직경영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 리더가 되면 좋겠다. 교과서에서 매번 하는 말이지만, 진짜 조직 비전을 제시하고 몰고갈 수 있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주는, 다른 직원을 괴롭히고 상사에게만 잘 하는 사람을 거를 줄 알고, 정책사업과 공공기관으로서의 미션을 이해하며 도전과 실패와 환류의 힘을 아는 리더가 필요하다.


현대카드 정태영 회장이 사람들은 현대카드가 굉장히 자율적인 회사라고 생각하고 창의적인 회사라고 생각해서 오해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그저 자유롭기만 할 거라고. 하지만 현대카드는 엄격한 조직문화가 있는 곳이라고. 데이터를 다루는 업무의 비중은 말할 것도 없지만, 외투를 의자에 걸지도 못하고, 슬리퍼는 책상 아래서만 신을 수 있고, 청소비품 하나도 회장이 회사에 어울린다고 선택하는 걸로만 사야한다고. 창의와 자율만큼 조직을 움직이는 규범과 책임도 크다는 이야기였다.


조직 리더가 가고자 하는 길이 확고하고, 그것이 일의 정확성과 과감함 뿐 아니라 '조직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명확한 책임과 자율, 임파워먼트가 필요한 지 알고 행할 때, 조직원들도 자기 성장을 거듭하며 나아갈 수 있다. 오래된 문화기획자 모임에서 다들 5, 10, 20, 25년 경력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보니, "우리는 과연 전문가인가? 문화기획? 문화행정? 문화경영? 문화정책? 무엇의 전문가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조직을 제대로 경영할 줄 아는 전문가, 경영자'가 되어야한다는 각성을 나누었다.


문화재단의 존재 의미와 현실적인 이유로 존폐 위기가 곧 닥칠거라는 말이 나온지 벌써 몇 년째다. 드디더 본격적으로 각 지자체 문화재단의 예산이 미친 속도로 줄고 있다. 총액이 줄면, 사업비가 줄고, 인건비 비율은 계속 늘어난다. 공간 운영비와 인건비 비중이 계속 커지고, 결국 조직정리의 순간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유령처럼 떠돈지 몇 년이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리더가 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어떤 리더가 오기를 바라고 있을까?


적어도 책상다리를 한다고, 솔톤이 아니라고, 아이를 가졌다고 비난하는 리더는 아닐 것이다. 나를 성장시키고, 사명에 열정을 태울 수 있는 비전을 들고, 현실의 장애물을 앞장서 처리하고, 건강한 문화를 만드는 리더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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