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와 그이와 나] 보라색 곰돌이 인연이 너였을 줄이야
그이와 나는 연애를 짧게 한 편이다. 처음 만나고 1년 째 되던 즈음 결혼했으니까. 1월에 처음 만나서 아마 4월이나 5월 정도부터 만나기 시작했는데 11월 11일이 되었다. 빼빼로 데이에 형광색 보라색 곰돌이 인형과 오래되어서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빼빼로 과자를 그이가 선물로 주었다. 형광 보라색 곰돌이라니. 이것은 외계인 아닌가. 이런 미적 감각을 가진 남자를 내가 만나게 될 줄이야!! 충격 그 자체였다.
그래도 어쩐지 자체발광하는 존재감의 인형이라 소중히 데리고 있었고, 우리집에 놀러오는 꼬마 손님들에게도 꽤나 인기가 있어서 잠시 대여도 해줬다. 나름 인기스타였다. 그리고 사랑이가 나타났다. 보라색 곰돌이에게 뭔 마력이 있는지 사랑이도 보라색 곰돌이를 처음부터 그렇게 좋아했더랬다.
지금은 자라서 곰돌이 키만큼 몸체가 커져서 저렇게 올라가서 잠에 들지는 못하지만, 곰돌이 사랑은 여전하다. 잠에서 깨면 자기가 노는 공간에 곰돌이가 있어야 해서 이사시켜달라고 왕왕, 잠 자러 갈 때는 곰돌이도 침대 가야한다고 왕왕, 자기가 뛰고 싶을 때 곰돌이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왕왕, 너무 집착해서 벽장이든 어디든 숨겨놓으면 그 앞에서 곰돌이 냄새 난다고 낑낑 왕왕. 곰돌이의 형광색이 바래질 정도 되고 코를 하고 물어서 흰 솜이 나왔는데도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
사랑이는 남자아이고 1년이 넘어서 중성화 수술을 했는데, 항상 곰돌이와 사랑을 나눈다. 처음 왔을 때부터 벌써 만 3년 반째다. 자기가 커진 건 생각 안 하고 곰돌이가 안 맞춰준다고 그렇게 왕왕거리더니 요즘은 적응이 되었는지 큰 무리없이 사랑을 나눈다. 이케아에서 자기랑 비슷한 사이즈의 유명한 강아지 인형도 새로 장만해줬건만 처음에 베게로만 좀 관심을 보이고 오직 곰돌이만 사랑한다.
사랑이도 곰돌이도 20년은 너끈하게 사랑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더라마는 그래도 사랑이의 일편단심 사랑만은 영원할 것 같다. 어쩌면 그이가 이 보라색 곰돌이를 선물한 건 사랑이라는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 예정되어 있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상 일이 지나고 보면 다 그렇게 되려던 것이었나보다 싶어지는게 신기하다.
- 오늘도 사랑이 동선에 따라서 곰돌이 이사시키느라 바쁜 보호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