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의 삶] 여성 기획자, 연구자, 행정가, 예술가들을 찾아서
엄마는 여학교 시절, '사람이 어떻게 마흔까지 살 수 있는가? 정말 긴 시간 아닌가?' 생각했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2차 세계대전중 있었던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옛날사람인 엄마는(*대동아 전쟁은 일본 군국주의를 드러내는 말로 1945년 사용중단 된 말) 본인이 궁금해하던 시간의 두배를 살아가고 있고, 그의 늦둥이 막내도 이미 40년이란 시간은 폴짝 뛰어넘은지 몇 해다.
이 즈음이 되니 사회생활을 한지 얼추 20년 안팎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XX 염색체들이 같은 연령 비교에서 당연히 더 오래 일했고, 더 많이 현장에 있는데, 그들은 왜 토론회, 세미나, 콜로키움, 정책위원회 등에서 씨가 말랐다 싶게 눈에 띄지 않는걸까? 사업 현장에 가면 온통 여자 실무자, 중간관리자들인데 왜 거길 넘어가면 여자들이 이렇게 없나? 얼마 전에 국공립대학교 교수 중 25%를 여자로 채용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개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핀란드는 얼마전 30대 여성총리를 맞았고, 그들의 4대 정당 대표도 모두 여성이자 3명은 30대이다. 그들과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회에 살고 있는 걸까?
국가통계포털에서 '연령별 성별인구 총조사'를 검색하면 70대 이전까지는 항상 남자가 더 많다. 하지만 그것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남자들만 우글우글한 이유가 될까?
업계 사람들의 sns를 돌다 보면, 그다마 문화다양성 감수성, 성인지 감수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던 남자들, 꼰대이즘에 반기를 드는 남자들이 지역 행사마다 단골로 출연하는 동료이자 친구이자 형님들과 잔뜩 어울리는 술자리 사진이 올라오곤 한다. 그 사진에는 그들만의 놀이 댓글이 무수히 달린다. 여성 기획자들이 모이면 가끔 그 행사와 사진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은 소름돋고, 조금은 화가나고, 조금은 혐오스럽고, 조금은 경계되는 마음에 대해서. 사진의 형님, 동생, 친구들은 개방적이고 혁신적이고 깨어있는 문화인이며,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소수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들도 그렇게 모여서 얼싸안고 둥글게 둥글게 스크럼을 짜고 이 기관에 이 친구, 저 기관에 저 친구를 소개하고 연결하면서하루하루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또다른 기득권 패거리 문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었다는 걸 인식하고 있을까? 그런 경계하는 마음이 1이라도 있을까?
간혹 열리는 바글바글 집담회가 열리면 절대 다수는 남성 기획자, 연구자들이다. 그러나 문화예술 현장을 둘러보라. 다양한 기관은 물론, 현장의 예술가, 기획자들 중에 일선에 일하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있는지. 그런데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왜 정책을 이야기한다면서 소위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여성 기획자, 예술가의 목소리가 나가는 구멍은 이리도 작은가? 매일 모여서 같이 술마시는 사람들, 술자리에서 너도 가네, 나도 가네, 내일 그 곳에서 봅네 하면서 떠드는 사람들, 왜 매일 그 사람들만 모여서 이야기하는 걸까?
무언가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를 꾸릴 때면, 늘 여성 발화자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없어서가 아니다. 추천에 추천을 받아서 진행할 때, 잘 모르니까 어떤 기관 혹은 단체의 책임자를 찾게될 때, 업계의 토론회나 워크숍 발제자에서 후보군을 추리다 보면 97%는 남자가 된다. 이게 뭔가.. 내 주변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업계의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현장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인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소한 것부터 대담한 것까지 그들이 일하지 않는 곳이 없는데. 왜 그들이 호명되는 곳이 이렇게 없는가?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