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최근 10여 년 동안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업무의 특성상 주로 외부에서 고객과 미팅을 하거나 혹은 협력사 관계자와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외부 기관들과의 친목모임까지도 점심시간에 하다 보니,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기회는 더욱더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고객과 약속이 없는 날도 자연스럽게 외부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습관은 어쩌다 혼밥을 해야 하는 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점심 식사는 외부 식당을 이용한 반면, 아침식사는 달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매일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 6시에 스포츠센터에서 운동과 샤워를 하고 나면,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구내식당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즈음 아침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을 큰 행운으로 생각했다. 특히 아침에는 다양한 종류의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김밥 그리고 다양한 기호의 라면 그리고 라볶이와 달걀 등의 분식이 있었고, 해장국 위주의 한식과 샐러드 기반의 웰빙식도 있었다. 선택의 폭이 다양해서 '복지'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한 구내식당 아침 식단이었다. 그래서 뿌듯함이라는 양념이 무상으로 곁들여지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직무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할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이 어색했다. 길게 웨이팅을 하다가 순서대로 식판을 들고 또 순서대로 신분증을 태그 하고는 차례대로 밥과 반찬들을 식판에 담는 과정들이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적응이 되면서, 점점 구내식당의 매력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먼저, 식사의 청결함과 정갈함이다. 테이블도 차려진 음식도 그리고 각종 식기류도 모두 더없이 청결하다. 또한 영양사와 조리사의 복장에서도 신뢰감이 느껴진다. 어느 고급 식당보다 위생에 더욱 신경을 썼을 것 같은 생각이 앞선다. 특히, 고민과 정성의 결과로 차려진 음식의 정갈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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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이용자가 직접 음식을 담기 때문에 '골라 먹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이러한 자율배식 식단은 최근 평균연령이 높아진 대다수 직원들에게 식이요법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일괄적으로 백미밥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현미밥이나 잡곡밥도 차려져 있어 얼마든지 원하는 종류의 밥을 선택하거나 섞어서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식당 중심부에는 샐러드 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다양한 드레싱과 함께 즐길 수 있다. 게다가 퇴식을 한 후에는 매일 달라지는 후식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세 번째는 메뉴 선택의 고민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외부 식당에 나가서 먹을 때는 식사를 할 때마다 '뭐 먹을까요?' '아무거나' '저는 다 좋습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한 후에야 용기 있는 자에 의해 메뉴가 결정 난다. 그렇게 결정이 나면 곧바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웨이팅 없이 먹으려면 말이다. 만약 이미 만석이라면 또 다른 메뉴를 찾아 헤매야 한다.


네 번째 장점은 눈치 볼 필요 없이 모두가 '더치페이'라는 것이다. 각자 신분증 태그로 결제한다. 얼마나 합리적이고 또 편리한가? 최근 급격하게 상승한 물가로 인해 직장인들이 외식을 선택하기가 부담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1인당 만 오천 원 정도가 평균이다. 거기에 후식으로 카페까지 방문하면 점심 한 끼가 2만 원이 넘는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풍토도 늘어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건강식' 그리고 '다이어트'에 대한 욕구가 먼저겠지만, 외식 단가가 높아진 상황도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다섯 번째로 좋은 점은 시간적인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 식당을 이용하게 되면, 이동하는 시간과 음식이 나오는 시간 그리고 식사를 하는 시간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후식을 하는 시간 등 점심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점심이 부여하는 넉넉한 여유를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구내식당을 이용하면, 약 15분 만에 런치 타임은 끝나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적인 상황에 맞게 잘 활용하면 된다. 어떤 이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오침으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음악과 영상 혹은 게임을 즐기면서 잠시 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나는 '산책'과 '명상'의 시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점심시간 직후에 매일 회사 뒷동산으로 오른다. 가끔씩은 아파트 단지에 조성된 공원길을 이용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잘 꾸며진 '탄천'을 걷는다. 그 산책을 통해 피부와 마음으로 사계절을 느끼고 또 바람과 물소리를 향유한다. 그리고 내 몸과 소리 없는 대화를 한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내 몸의 크고 작은 움직임들에 집중한다. 그렇게 하루에 한 번 나를 돌아보고 나의 몸을 관찰하고 그러면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


솔직히 최근 10여 년간의 점심시간은 너무 복잡하고 정신없었다. 고객과 함께하는 다소 불편한 시간 그리고 상사들과의 타이트한 시간 그리고 각종 회사 업무의 모임에서 주관하는 공허한 점심시간은 어차피 업무의 연장선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점심시간이 단순해지고 건강해지고 있다. 벌써부터 정갈한 식이요법 식단이 기다려진다. 아니, 식사 이후에 갖는 산책과 명상의 시간이 기다려진다.


세상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참 많이 바뀌는 것 같다. 건강이 제1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중년의 관점에서 최근에 터득한 구내식당 예찬론을 더욱 구체화하고 또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할 생각이다. 얼마 전 어느 변호사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을 간절히 원한다고 역설했다. 우리 사회의 정상화를 위한 고뇌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게 어울리지 않았던 '외부 식당에서 식사하기'를 과감히 청산하고, 구내식당이라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산책하고 명상하는 본래의 풍경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P.S.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모임이나 가족 모임 혹은 특별한 여행지에서의 카페 방문은 즐겨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나 음악을 듣기 위해 아침 일찍 혼자 방문하거나 밤늦게까지 오픈하는 인근 카페를 찾는 것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점심 식사 직후에 연이어 찾는 우리네 카페 문화는 반기지 않는다. 맛깔스러운 외식 메뉴로 잔뜩 배부른 상태에서 다시 또 이어지는 커피와 빵의 향연은 다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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