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사이에 '빈 공간'이 존재하던 그때로.

by 담하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무렵이다. 그 변화는 단순히 ‘기계가 좋아졌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컸다. 스마트폰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뿐 아니라, 나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았다.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던 시절에는 소통 사이에 ‘빈 공간’이 존재했다. 답장이 조금 늦어도 이상하지 않았고, 그 침묵은 자연스러운 여백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어플 메신저가 일상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메시지를 수신했는지 여부가 즉각적으로 공유되며, 소통은 실시간 반응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다는 편리함이 생긴 대신, 답장이 늦어질 경우에는 그만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따라왔다. 관계는 서서히 의무에 가까워졌다.


이런 변화는 나에게 달갑지 않았다. 나는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나는 소위 말하는 멀티플레이가 안 되는 사람이어서, 한 가지 일이나 사람에게 집중하면 다른 것에는 신경 쓰기 어려웠다.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까지 동시에 챙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면 연락은 자연스럽게 늦어졌고, 그만큼 해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실시간 소통에 대한 부담은 그렇게 조금씩 쌓여갔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에도 한동안 구매를 미뤘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시대에 홀로 버티듯 시간을 보냈고, 결국 몇 해가 지나서야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기술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회피에 가까웠다.


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 것은 메신저의 단체 대화방 기능이었다. 문자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일대일 소통이지만, 어플 메신저에서는 제한 없이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대화할 수 있다. 원래부터 여러 사람과의 느슨한 관계보다 소수와의 깊은 관계를 선호해 온 나에게 단톡방은 꽤나 부담스러운 구조였다.


단톡방에서는 침묵조차 의미를 갖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무성의해 보일까 신경이 쓰였고,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대화에 끼어들자니 돌아올 반응이 부담스러웠다. 늘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주도했고, 느린 편인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때마다 미안함을 느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메신저를 확인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일부 관계에서는 스스로 한 발 물러나게 되었다.


스마트폰의 부담감을 증폭시킨 것은 ‘보여지는 것’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메신저 프로필과 SNS를 통해 본의 아니게 굳이 알지 않아도 될 타인의 삶을 손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점점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갔다. 누군가의 행복한 순간을 공감하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다가도, 그와 동시에 비교의 감정이 불쑥 올라와 마음을 괴롭혔다. 나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기록을 고민하게 됐다.


사람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것은 여전히 좋다. 그러나 작은 화면을 통해 타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나에게 과도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머리로는 SNS가 비교와 부러움을 유도하도록 설계된 공간이며, 그곳에 올라오는 장면들이 평범한 일상이 아닌 특별한 한순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나의 삶을 다독이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그 과정 자체에 지쳐 있었다.


결국 나는 숨기로 했다. 보지 않기로, 참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선택이 때로는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마음이 덜 흔들리는 상태를 지키는 일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앞서 나아가는 삶이 아니라, 나의 속도에 맞는 삶을 살기로 했다.


스마트폰 이후의 세상에서 나는 조금 느리고, 조금 덜 연결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관계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극을 과도하게 견디지 않는 사람이고, 느린 속도를 존중하는 사람이다. 이 선택은 도망이 아니라 결단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이 방식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든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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