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믿는다는 것

by 오붓한일상

어제는 준이 미술학원 가는 화요일, 준이는 이 날을 가장 좋아한다.

엄마가 미술을 전공했으니 미술학원은 다니지 않아도 될것 같다고 글을 쓴 적도 있지만, 미술학원을 보내보니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됐다. 역시 자식은 남이 가르쳐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


준이는 남아전문 미술학원(이하 '자라다')에 다닌다. 선생님도 남자, 원생도 모두 남자. 그 곳은 남자아이들의 특성을 가득 가득 담아서 선생님마다 작업실을 배정하고 매월 특별 재료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미술 재료들과 공구를 마음껏 쓰면서 원하는 것을 만들고 실현시키는 활동을 한다. 미술을 배우러 가지만 평소에 마음 속에 숨겨두거나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을 활동과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그리는 방법, 색칠을 꼼꼼하게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상상했던 것을 손으로 만지고, 그리고 만들어 보면서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며 자아의 성장을 돕기도 한다.


준이의 ADHD 치료를 목적으로 약 복용 외에 활동 치료를 알아보던 중 복지관에서 하는 미술치료와 자라다를 두고 고민을 한참 했다. 두군데 모두 한번씩 다녀온 후 준이는 자라다에 갈래요!를 외쳤다. 샘플수업을 갔는데 공구와 다양한 재료가 가득한 작업실에 한번 반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선생님이 좋았고, 아무거나 만들고 그려도 그것을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 것이 좋았나보다. 샘플 수업 후에는 약 40분 정도 성향파악 상담을 했다. 아이의 특성을 대부분 파악한 선생님은 꽤 체계적인 수업 과정을 제안했다. 상담 초반 준이가 ADHD라고 말했지만 그건 중요해하지 않았다. 준이를 '집중력의 전환이 빠르고(반대로 말하자면 주의집중력이 부족한), 다양한 호기심을 가진 아이'라고 해석했다. 괜히 마음의 위로를 받는 듯 여기에는 준이를 보내도, 준이가 우당탕탕해도 괜찮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치료'를 목적으로 했기에 복지관의 미술치료를 선택했고, 그 소식을 들은 준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라다에 가겠다고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를 쳤다.


마침 병원 진료가 있던 주간이라 주치의에게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던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셨다. 즐거워 하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고 하셨고, 미술치료가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긴 하나 궂이 '미.술.치.료'라는 말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집에 돌아오던 길 준이에게 자라다에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얼굴에 함박웃음을 보인다.


자라다에 보낸지 두어달. 수업 결과물은 이게 도대체 뭐지... 분리수거를 해야하나 싶을 법한 작품들이지만 준이는 열정을 보였고, 자신의 생각을 마구 풀어냈다. 선생님은 동화책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분이셨고, 책만들기를 좋아하는 준이를 위해 준이가 끄적인 종이책들에 두꺼운 종이를 덧대 책처럼 만들어주셨다. 내용이 부실하든 아니든 그런 건 언급도 없이 말이다. 나를 닮아 그런지 만들기 손이 빠르고, 잘 구현해내는 재주 덕분에 자신의 생각을 뚝딱 만들어내길 잘 하는데, 작업실에 재미있는 재료들이 많다보니 하루 수업에 2~3개의 작품은 거뜬히 만들어낸다. 선생님도 준이의 재주를 발견하셨지만 앞으로는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병행해 보자고 하신다. 그런 활동을 통해 주의집중력이 흩어지는 것을 멈추고 반복해서 섬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준이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동안 집에서만 끄적이던 것을 '선생님'에게 인정받으며 만들어오니 결과물이 어떻든 스스로는 즐겁고 '나는 만들기를 잘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부쩍 올랐다. 같은 시간에 수업을 받는 동갑내기 남자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 참 기특하다.


그런데, 어제 수업을 들여보내고 대기실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준이의 소리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평소처럼 후다닥 뛰어 교실쪽을 향해 몇걸음 달려갔는데 데스크의 실장님이나 선생님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벌레를 봐서 그랬는지 깔깔거리는 소리로 바뀌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이가 학원에서 소리를 질렀다. 보통 조용히해, 그만~ 이라고 할 법도 한데 이 곳은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고 나만 마음이 급하게 달려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저 벌레를 봤고 친구들이랑 서로 잡으라고 목소리를 조금 높인 것 뿐인데 나는 준이가 사고를 친건 아닌가! 하고 달려갔다.


순간 뒷통수를 한대 맞은 듯. 아... 결국 준이를 가장 믿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나였구나. 엄마라고 시종일관 쫒아다니며 준이가 우당탕탕 행동을 하지 않을까 통제하고 전전긍긍 걱정하며 쫒아다닌 사람은 나였구나. 항상 복도에서 아이들이 소리지르는 소리가 들리고, 애들이 중간에 교실 밖을 나와도 누구하나 혼내지 않고 스스로 교실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분위기가 생소했지만 고마웠다.


준이는 어제도 예쁜 쓰레기를 들고 함박 웃음을 지으며 교실에서 나왔다. 수업 후 선생님의 브리핑에서 준이의 장점을 한참 들었고, 그동안 내가 준이를 믿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넘치는 가능성을 가진 준이를 앞으로는 더욱 믿고 기다려줘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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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랑하자, 더 사랑한다고 말 해주자. 끌어안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언제나 안전한 곳이 집이라는 것을, 엄마와 아빠의 품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자. 준이를 믿고 끝까지 기다리자.



*내돈내산,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적은 글 입니다.

다른 어머니들과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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