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겨울이 왔다.

by 오붓한일상

입동이 지났지만 한참 미지근한 온도의 날씨로 계절을 모른채 꽃이 피고, 나들이를 다녔던 날들. 어제부터 시작된 칼바람은 이제 진짜 겨울이 시작됐음을 알려준다. 동장군이 온다고 하던가, 옛 어른들의 말이 재미있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오래된 기억인데 그 때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선릉역 근처에서 디자인회사를 다녔을 때다. 지금과 비슷한 시기의 한겨울이었는데 그 날은 눈보라를 동반한 칼바람이 세게 불던 날이었다. 퇴근길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데 입구 아래 한 노숙자가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었다. 더러워진 발은 양말도 없는 맨발에 슬리퍼 상태. 온몸을 꽁꽁 싸매고도 이렇게 추운데 바람이 훅훅 들이치는 곳에서 얼마나 추울까 하며 마음이 쓰였다. 아마도 역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눈치가 보이고 밖으로 나가자니 흰눈이 가득 쌓인 길에 있을 수는 없어 그 곳에 자리를 잡은 듯 했다.


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지도 못한 채 그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신고를 할까, 얼어죽으면 어떡하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역 안에 있는 악세서리 가게에서 수면양말을 하나 사들고 왔다. 아저씨를 깨워서 신으시라고 해야지, 마음을 먹었지만 괜히 무서운 마음에 양말을 든 채 망설였다.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폰을 꺼내 112를 눌러 선릉역에 노숙자가 자고 있는데 얼어 죽을것 같다며 도와달라는 신고를 했다. 곧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아저씨를 흔들어 깨우며 “아저씨, 여기 계시면 안돼요~! 오늘 같은 날씨에 큰일나요.“ 아저씨는 주섬주섬 일어나 앉더니 정신을 차리고 알겠다는 표시를 하고 일어서 계단을 올라 입구 밖으로 나갔다. 경찰은 아저씨를 뒤따라 갔고 나는 결국 양말은 전하지 못한채 터벅터벅 역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을까? 따뜻한 곳으로 가셨겠지? 경찰이 잘 챙겨줬겠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한편으로 괜히 더 추운 밖으로 내쫒은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경찰을 괜히 불렀나 하는 뒤늦은 후회감도 밀려왔다. 아저씨는 역에서 쫒겨났다고 생각할까, 신고한 사람을 원망할까? 그 뒤로 이렇게 차가운 바람이 불거나 뜨거운 여름이 되면 마음 한켠이 불편하다. 망설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내 모습이 바보 같기도 했고, 용기를 내지 못한것이 아쉽기도 하다.


오전, 알림 소리가 쨍~하게 들리는 폰을 보니 한파 경보가 발효되었고 외출을 자제 하라는 메세지가 왔다. 메세지 끝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함께 살펴봐주세요.’라는 문구가 있었다.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린다.


진짜 겨울이 되었다. 정말 춥다. 추위를 이길 방법은 꽁꽁 싸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는 것 보다는 어깨를 풀고 가볍에 달리며 고개를 들고 두리번 거리다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어깨에 힘을 빼면 실제로 추위가 덜 느껴진다. 또 다시 그때와 같은 상황이 오면 이번에는 용기를 내야겠다. 양말을 내밀고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전해야지. 몸은 춥더라도 마음만은 따뜻하게 그렇게 겨울 나기를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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