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정리, 인생 정리, 생각 정리

by 오붓한일상

옷장을 정리했다. 1년 전 이사오면서 안입는 옷을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하고 그 사이 산 옷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옷장에 옷을 넣기가 어려워지자 정리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서랍을 차례로 열어 계절 두번이 넘도록 입지 않은 옷들을 꺼냈다. 준이의 옷 중에도 팔이 짧아진 점퍼들과 바지를 꺼냈다. 쇼핑백 하나가 가득히 채워진다. 곧 복직인데 입을 옷이 없을 것 같은데도 버릴 옷을 꺼내니 개운한 느낌이 든다.


최근 1-2년 사이 나는 김포프리미엄아울렛 아디다스의 운동복과 아름다운 가게에서 가끔 민무늬의 심플한 옷들을 골라 몇개 산것이 전부다. 궂이 좀더 나은 일상복을 살 때는 동네 NC백화점에 들러 아울렛 가격으로 역시 단순한 형태의 옷을 구매한다.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는 허벅지 아래로 오는 옷은 입지 않을만큼 짧은 옷만 입고, 모자부터 신발까지, 직접 머리를 자르고 컬을 말고 다닐 만큼 멋을 부리고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느라 그만큼 쏟을 에너지도 없지만 심플하게만 입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마크 저커버그 같이 같은 색과 모양의 옷만 사진 않는다.


옷장을 열어 정리를 하면서 지인 중 준이보다 어린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에 옷을 줄까 생각을 했다. 나도 지인들에게 옷을 물려받아 입히기도 했고, 그 덕에 좋은 옷들을 다양하게 입힐 수 있었기 때문에 옷값도 많이 안들고 준이를 키울 수 있었다. 이제는 옷을 받을 나이도 지났고, 준이 정도의 남자아이들의 옷은 한철 입고나면 무릎에 구멍이 나거나 얼룩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주는 사람도 없고 받을 일도 많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옷장을 정리하면서도 준이 옷은 외투가 대부분 쓸만했다.


옷을 전해주면 좋아하려나, 나는 깨끗한 옷을 준다고 해도 괜히 버릴 옷만 넘기는 느낌을 갖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당근에 저렴하게 내 놓고 커피 값을 만들어 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가 아름다운 가게에 내놓자고 결론을 내렸다. 나 역시 그 곳에서 괜찮은 상태의 옷들을 사 입기도 했으니 아직 쓸만한 옷들을 내놓고 세액 공제도 받으면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옷장을 비우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니 집 전체에 여기저기 구겨넣어둔 짐들을 하나씩 줄여가야겠다. 요즘 물가가 올라 냉장고도 한달에 한번 묵직하게 장을 보고나면 그 뒤에는 냉장고 파먹기로 보내고 있는데 식재료가 하나하나 줄어들면서 사이로 틈이 생기고, 여유로워지는 것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신랑은 비어있는 냉장고를 보면 궂이 큰 냉장고를 살 이유가 없었다며 투덜거리긴 하지만 말이다.


나의 공간들을 비워내고 정리하다보면 삶도 함께 단순해지는 것 같다. 궂이 이걸 쓸가, 저걸 쓸까 고민할 필요가 줄어들어 밖으로 내보낼 에너지를 내 안에서 다른 것으로 사용할 수 있게되어 그런가보다. 내일은 테라스를 정리해야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있는 창고부터 하나씩 비우자. 내 삶에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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