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아르바이트 경험기
육아휴직을 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아르바이트였다.
미술을 전공하고 문화예술 분야의 기획자로 일하다보니 그동안 했던 아르바이트는 디자인, 공연기획, PPT디자인, 캐드 도면 제작, 간판 디자인 등 전문 분야와 관련된 일들 뿐이었다. 이번 기회에 카페나 빵집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새로 이사온 동네의 일거리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육아휴직 중에는 1주 15시간 이내, 1월 150만원 이하로 제한이 있었고, 심지어 카페와 빵집은 40대 아르바이트생은 구하지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당 서빙이나 설겆이, 가장 연락이 많이 오는 건 보험 텔레마케팅이었다. 물론 전문 분야와 관련된 일을 찾아 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언제 이런 일을 해보겠냐며 땀을 흘리며, 몸을 쓰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쿠팡 헬퍼를 신청해보기로 했다. 일산에 살고 있으니 김포나 파주에 물류센터가 많고, 가까운 거리에서 쉽게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었다. 하루 또는 반나절만 일하면 되니 육아휴직 아르바이트 제한 조건에도 넘지 않는 좋은 조건이었다.
2월 26일 김포 고촌 일산8캠프 금요일. 주중에는 아이를 케어해야 하니 일요일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하는 일정으로 출근을 했다.
프레시백 세척. 롤테이너에 가득 쌓인 프레시백을 하나하나 펼쳐서 기계에 넣고 세척되어 끝없이 나오는 프레시백을 접고, 5개씩 쌓아 바코드를 찍고 파레트에 120개씩 쌓고 랩으로 감아 옮겨두는 일. 4명이 1조가 되어 진행되었고, 나는 당일 1일 아르바이트 오신 분들과 한 조가 되었다.
내 역할은 접은 프레시백을 5개씩 쌓고 바코드를 찍는 일. 프레시백은 무게도 가볍고, 바코드를 찍는 건 일도 아니라 일이 너무 쉽군~ 이라고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내가 전달하는 프레시백을 쌓는 역할을 하시는 분이 열정에 넘치시는지 기계에 프레시백을 펼쳐 넣는 분이 힘이 드니 왔다갔다 하며 일을 돕는게 아닌가. 정작 본인이 쌓아야 할 프레시백은 밀려 쌓여가고 있는데 말이다. 급한대로 내가 움직이며 쌓고, 랩으로 포장을 하며 일손을 도왔는데 이게 웬걸 그분이 해야 하는 일까지 내가 왔다갔다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어차피 몇시간 일하지 않을텐데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싫고, 또 만날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에 아무말 없이 하긴 했지만 부리지 않아도 될 오지랖을 부려가며 본인의 일을 미루는 건 무슨 심리일까 한참 생각을 했다.
그럭저럭 일이 끝나고 마무리 시간이 되어 정리를 하고 나왔다. 몸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못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두번째 출근은 3월 4일 일산1캠프 토요일 오후 7시1반~12시반 반품조.
이 날의 일은 더 쉬웠다. 1일 아르바이트에게는 무거운 박스 업무를 주지 않는다며 봉투 택배 반품 건 분류를 맡았다. 바코드를 찍고 4가지로 나누어 던져놓는 일. 이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충격적이었던 건 정말 반품되는 물품이 많았다는 것이다. 끝없이 들어오는 롤테이너와 그 안에 들어있는 각종 반품 물건들. 심지어 터진 세탁세제 때문에 아예 반품 처리가 불가한 것도 있었고, 캔음료 박스가 터져 음료는 여기저기 굴러가있기도 했다. 관리의 문제도 있겠지만 생각없이 주문 했다가 생각없이 반품하는 일도 적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쉬는 시간도 넉넉했고, 같이 일한 분과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누며 시간은 훌쩍 지나 마무리를 했다.
2일 일하고 받은 돈은 110,110원 고용보험 0.9%가 공제된다. 일용직으로 일하고 제한 조건을 넘지 않기 때문에 육아휴직 급여 받는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쿠팡 헬퍼는 할만한 일이었다. 주말마다 하루 쯤 하면 아이의 영어학원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겠더라. 그리고 반복되는 일을 몸을 써서 하다보니 잡생각도 없어지고, 의외로 머리 속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일하는 분들도 정말 돈이 필요해서 일한다기 보다 아이 학원비 보태려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참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물건 살때 많이 생각하고 사자...ㅎ
쿠팡 헬퍼를 한번 하면 그 뒤에도 모집 문자가 계속 온다.
나는 비교적 힘이 적게 드는 업무만 했는데 다른 업무도 한번 경험해봐야겠다.
이번 주말도 신청해봐야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