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공 엄마의 자식 재능 발견하기
나는 미대를 나왔다. 그런 나에게 대부분 회화과를 졸업했냐고 하지만 용접을 하고 돌을 깎고 20kg 석고포대를 나르며 작업하는 조소과를 졸업했다. 디자인을 전공하려다가 새하얀 도화지를 채우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는 중학교 시절 나의 미술적 재능을 유심히 살펴주신 미술선생님 덕분에 입체와 공간에 강점을 가졌다는 걸 발견했고, 고3 때 조소과로 전향하면서 목표했던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미술을 전공하려면 다들 그림을 잘 그려야 하는 줄 안다. 그러나 나는 지독하게도 그림을 못그린다. 뎃생을 3년 넘게 했지만 실기시험에 뎃생을 해야했던 학교는 똑 떨어졌고, 지금도 신랑이 내 그림을 보면 미대에 간걸 신기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간과 입체에 강점있는 덕분에 공간에 따라 조형물의 구조를 잘 파악하고 구현하는 실행력이 있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의 기획 업무와 매우 잘 맞아 떨어진다. 내 작품을 올릴 작은 좌대의 공간에서부터 지금은 하나의 자치구를 담당하는 기획자가 되었으니 나름 만족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물론 일에 대한 성취감은 매우 다른 언어이긴 하지만 말이다)
준이는 그림그리는 것도, 만들기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부터 침대, 책꽂이, 책상에 연필로 그리는 걸 그냥 두었고, 공부할 때 쓰라고 사준 대형 보드에는 자신만의 세상을 가득 그리곤 했다.
집에 있는 분리수거 쓰레기들도 준이에게는 놀이 재료다. 박스로 고양이집을 만들어 들어가 놀고있고, 집에있는 온갖 종합장과 노트에는 가득하게 그림을 그려놓았다. 언제나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공간을 나누고 공간별로 상황과 캐릭터를 상상해서 그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다. 아직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현실로 옮겨올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어느날 준이 같은반 친구 엄마가 미술학원을 등록했다는 말을 했다. 학원에서 사람 그리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사람을 매번 잘 못그려서 걱정이었는데 가장 필요한걸 해준다며 매우 반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사람 그리는 방법을 배워야 하나?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미술, 신랑은 음악을 전공한 예체능 가족이라 그런지 궂이 예술을 돈 주고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사실 준이는 예술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궂이 시키지 않는 것도 있지만 뼛속부터 예술혼을 담고나온 아이인지라 궂이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예술적으로 잘 논다.
가장 좋은 예술교육은 그걸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만의 상상을 펼치며 이것저것 만들고, 그려도 보고 실패도 해보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률적인 노하우로 '잘하는 미술'을 궂이 판에 박히듯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예술이라고 말하면 안되지, 학습이 되는건 반대한다. 나 역시 하얀 도화지에 구도잡는 몇몇 규칙을 기준으로 디자인을 하려고 했을 때 큰 어려움을 느끼고 실패감을 맛보지 않았는가. 예술은 예술일뿐 실패하는 느낌을 궂이 배울필요는 없다고 본다.
영어학원을 그만두면서 월, 수, 금 오후 시간이 텅~ 비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4교시만 하고 돌아와 공부를 끝낸 뒤에도 시간이 널럴하게 남는걸 보고 쉬는 날(주말) 같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주 부터는 월요일에는 미술놀이, 금요일에는 음악놀이를 해보기로 했다. 조금 있으면 집에 오는 시간인데 오늘은 택배 상자를 재료로 준비했다. 오늘도 역시 몇개의 재료를 꺼내주고, 필요한걸 말하면 또 챙겨주고 그냥 내버려둬볼 예정이다. 뭔가 하겠지.
활동을 한 뒤에는 뭘 만든건지 이야기를 풀어내보라고 할 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될거다. 나는 엉뚱한 질문도 던지고, 준이는 그 답을 하기 위해 생각하고, 논리를 만들며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무엇을 만든건지 말하면서 차근차근 정리할테지. 그런 자유스러운 작업들을 꾸준히 하다가 조립하거나 움직이는 로봇 같은 것도 가끔씩 함께 해보고 싶다.
날씨가 좀더 풀리면 베란다를 작업공간으로 꾸며줘야겠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미술 도구들도 모아서 사용하기 편하게 정리해줘야지.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미술학원은 다니지 않아도 괜찮겠어.
음악학원은 집에서 기타를 한번 튕기면서 놀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