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천국을 꿈꾸며
오래 버티는 놈이 이기는거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저 문장에서 항상 걸리는 부분이 있다.
왜 '버텨야' 하는 것인지. 버티는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왜 버티는 것이냐는 말이다.
'버티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출처. 네어버 국어사전)
1. 어려운 일이나 외부의 압력을 참고 견디다.
2. 어떤 대상이 주변 상황에 움쩍 않고 든든히 자리 잡다.
3. 주위 상황이 어려운 상태에서도 굽히지 않고 맞서 견디어 내다.
위 뜻을 바탕으로 버티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몸은 뻣뻣해지고, 목은 곧추세우고 전혀 흔들리거나 부드럽지 않은 상태가 떠오른다. 온 몸이 아플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볼 수도 없을 것이고, 내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자세로 버티며 인생을 산다? 이제는 80년을 넘어 100년을 바라보는 세상인데 그렇게 딱딱하고 뻣뻣한 몸으로 인생을 살자니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누린다'는 말을 좋아한다.
누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 속에서 마음껏 즐기거나 맛보다'라는 뜻이다. 일상에서 심지어 마음껏 즐기고 심지어 맛도 볼 수 있다니 어찌 이렇게 행복한 일이 있나 싶다.
아침의 화창함을 누리고, 입안에 들어오는 향긋한 커피 한잔과 바삭한 크루와상을 즐기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루종일 하면서 성취감을 맛보는 것. 그렇게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과연 나는 누리고 있나 또 반성모드로 들어선다.
아니다 나는 절대 그렇게 누리고 살지 않았다. 매일을 일에 메어 없어도 되는 부담감을 스스로 만들었으니 누릴 수 있었겠는가? 일을 하고 있으니 준이에게 쏟아야할 애정의 시간에 죄책감을 느끼고, 친정엄마의 노후를 뺏으면서 준이를 맡기고 있으니 죄송함에 죄책감을 느끼고, 피곤에 절어가는 내 몸에 미안함을 느끼면서 지금껏 시간을 낭비한건 아닌가 싶다.
반대로 생각하면 일을 하고 있으니 준이는 스스로 하는 법을 배웠고, 친정엄마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손주와 함께하는 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고, 피곤하지만 이렇게 진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인정받는 것을 누릴 수 있었는데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버텼다, 버텨냈다, 잘 버텼다'로 정의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좋아하는 말 처럼 삶을 살고 싶은데, 마음이 따라오지 못함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누리자,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버티고 있다면 지금부터 우리 모두 인생을 누려보자.
고달프고 피곤하고, 벗어나고 싶어 죽겠어도 그 시간 속에 미세하게 찾을 수 있는 기쁨을 찾아서 그것이 내 삶의 전부를 미소지을 수 있게 만들도록 가득 가득 누려보자.
뭐 대단한 일이 있어야만 가능한 건 아니지 않나.
늦은 이 밤, 글을 쓰는 중에도 바삭거리며 내 입을 즐겁게 하는 감자칩 한봉지로 나는 인생을 즐겁게 누리고 있다.
행복하자.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