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차다 : 희망 따위가 넘칠 듯이 가득하다
오랜만에 점심 약속이 있었다. 화요일은 준이가 5교시를 하고 방과후 수업이 있는 날. 여유롭게 약속을 잡을 수가 있어서 브런치를 겸한 11시에 맞춰 식당에 갔다. 일산 맛집이라는 평양냉면 전문점 양각도. 비가 오는 날이라 차가운 평냉이 괜찮을까 싶었는데 역시 좋았다.
오늘 만난 사람은 2016년 준이를 낳고 '일을 해야겠어!'라고 마음 급하게 취업했을 즈음 알게된 분이다. 친한 재즈피아니스트에게 블로그를 통해 '공간을 오픈 예정인데 공연을 요청한다'는 메세지가 왔고, 종종 공연을 같이 기획하던 나와 함께 미팅을 하러 갔다가 지금까지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그분은 문화예술 공간, F&B, 미디어전시공간, 도시재생 사업과 콘텐츠 제작, 투자 등 여러 방면에 사업을 펼치고 있는 기업의 이사님이다.
워낙 예술 분야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많아 일이 끝나면 다시 볼 일은 별로 만들지 않는데 공간의 오픈 공연에 이어 약 30회의 재즈 공연을 기획했고,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계를 맺고 있다.
나는 공연 기획을 할 때 뮤지션과 사전미팅으로 식사를 하며 인터뷰를 하고 음악 뿐 아니라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예술하는 사람'에게 남다른 시각을 가지셨던 이사님은 3시간~4시간이 되는 미팅을 항상 함께 참여하시며 언제나 맛있는 식탁으로 예술인들을 ‘섬겨’주셨다. 그분은 섬겼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쩌다 알게된 기획자를(그때 나는 이렇다 할 경력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존중해주시고, 기획을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것에 항상 감사했고, 그 생각을 배우고 싶었다.
공연은 코로나로 인해 멈췄고, 그 이후 다시 시작해야지 하는 생각을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어 내 마음은 많은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뭔가 제작할 것이 없이 약속을 잡는 것에 괜찮을까 했는데 오늘의 만남도 그저 맛있는 식사를 하고 공간이 좋은 카페에 가서 사는 이야기, 기획 이야기 등등 편안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대화가 가득했다.
벅차다.
힘이 들어 벅찬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와 마음이 설레이고 벅찬 감정이 들었다. 꼬꼬마 기획자였던 나에게 ‘어떤 기획자가 될 것 인가’를 생각하게 해주었고, 지금은 좀 더 나아가 대중적인 콘텐츠를 기획해보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시간이 즐거웠다.
또한 요즘 나는 해야만 하는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속도대로 걸으려고 매우 노력 중인데 그 또한 재촉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넌지시 하나하나 제안해주신 것에 감사하다. 그 감사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늘 느낀 벅참을 담아 기획서를 쓰기 시작해야겠다. 그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봐야지. 그리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야지.
나는 누군가를 벅차게 하는 사람일까? 나의 기획이 누군가를 벅차게 한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