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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Oct 12. 2017

사람이 그은 선 안에 들고 못 들고 하는 운명에

오늘 날씨 흐림

뿌리째 옮길려면 돈이 엄청 들잖아
사람이 그은 선 안에 들고 못 들고 하는 운명에
나무는 뿌리만 두고서 쓰러진다
20년 된 아파트에
뿌리만 업보처럼 두고서
줄기는 베어다 올라 온다
옹이 많은 줄기 팔릴 리 없고
쪼개고 갈라서
책받침이나 하나 만들어 본다
(그 두뼘만한 것에도 눈물점처럼 옹이가 있다)
부끄러웠던 나무가
생각이 나서
나는 때때로 책을 소리내어 읽는다
제사에 차린
못 드셨던 음식처럼
나는 때때로
무리를 해서 상을 차린다
다 읽으면
우리는 또 멀어진다
열어둔 문을 닫으면
공기처럼 가시고
사는 일과 기다리는 일은
또 다른 달력이 올 때까진
그렇게 서로의 궤도 위에 놓인다고
열심히 하면 된다
우리는 그저
사람이 그은 선 안에 들고 안 들고 할 뿐이라면

W 심플.
P 영화 “걸어도 걸어도” 중.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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