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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Dec 29. 2017

어쩌면 우리의 만남은

오늘 날씨 흐림

너와 나의 만남은
너와 나의 그 어떤 신체에서가 아니라
가령 너의 눈 안에 내가 비치고
그 반대도 또한 일어나고
너의 손이 나를 잡듯
나의 손도 어김없이 너를 잡고
그 모든 공평한 연결들
하지만 관통은 아닌
너와 나의 그 어떤 말들이 조직하는 그 지루한 의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령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들
하지만 세상 다를 것이 없는
너에게서나
지나친 나에게서나
너와 나의 만남은
너와 나의 숨길 수 없었던 어떠한 불분명함
말하자면 텅빈 곳
(세우는 것이 그림자를 만드는 필연처럼)
좌표가 없는
(정확히 말하면 좌표는 있지만 값이 없는)
간판이 없는 곳
(수식도 당연히 배당받을 이름도 없는)
하차벨을 누를 수 없는 그 곳을 통한 벗어남을 통해서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만남은
너와 나의 만남이 아닌
어쩌면 하나의 확인이고
그리하여 우리의 만남은
사실 만남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의 해체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켜왔던
너와 내가 없다는 고백을 통해서

너와 나의 만남은
너와 나의 숨길 수 없었던 어떠한 불분명함
말하자면 슬럼
(도심과 도심을 나누는 희미해진 경계에서 필연적으로)
경찰이 없는 곳
(차라리 눈을 감는 효율로)
뉴스가 없는 곳
(그것은 인색한 수평에 대한 처절한 수직이므로)
하차벨을 누를 수 없는 그 곳에서의 뚜렷한 인상을 통해서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만남은
너와 나의 만남이 아닌
어쩌면 하나에 관한 목격이고
그리하여 우리의 만남은
사실 만남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의 짜임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방황했던
너와 내가 움직여야 한다는 뜨거움을 통해서

W 심플.
P Van Mendoza.



201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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