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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Jan 24. 2018

적당히 높아 속이 검어 보이는 빈상자

오늘 날씨 얼음

사랑하는 당신
잘 계신가요
간밤에 그대가 나의 꿈을 꾸었다고 해서
나도 이렇게 펜을 듭니다
꿈과 비슷한 것을 드리고 싶어
찾다가
고약한 빈상자를 떠올렸습니다
그대의 소란한 바다 앞에서
등을 돌리고
적당히 높아 속이 검어 보이는 빈상자를 바라보는 그대를 상상하면서
때로는 삶에게 부탁을 하고 싶어집니다
“저기 잠시만 내가 정리할 시간을 좀 줄래?”
슝하고 차가 지나쳐 갑니다
하마터면 그대와 나의 발등을 칠 뻔 하면서
“앞을 잘 봐야해”
지나간 노인은 친절히 등이 굽었습니다
꿈과 비슷한 것을 드리고 싶어
찾다가
고약한 빈상자를 떠올렸습니다
적당히 높아 속이 검어 보이는 빈상자를 바라보는 우리를 상상하면서
무엇을 하지 않으면
무엇도 보이지 않는
그대와 나의 고약한 빈삶을
나는 왜 당신에게 굳이 주겠다 열심인가요
적당히 높아 속이 검어 보이는 빈상자가
이제 당신의 눈 앞에 있습니다
당신의 등 뒤 바다는 소란한가요
당신의 등조차 못 적시면서
소리는 꽉 차있고
(말과 말 사이에도 우리는 말을 들어야 하니까요)
검은 속이 아니라면
시야의 그 어느 곳에도
무한히 무한한 것들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W 심플.
P Clayton Caldwell.



201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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