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 쌀쌀해져도 봄은
사랑하는 사람아
우연히 같은 열차에 몸을 실은
우연하여 인연처럼 나란히 앉은 나의 유일한 타인아
역과 역이 대단히 먼 열차는 쉼없이 내달렸고
풍경은 숲에서 황무지로 논 밭 보잘 것 없는 집들에서 또 바다로 쉼없이 바뀌었지만
내 어깨 너머 타인은 당신으로 유일했다
결국은 같은 곳으로 가고 말 조그마한 열차 안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가
고개를 꺾어 기대며 그루잠을 잤다가
혼자 일어나 화장실을 갔다가
괜시리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가
글이나 그리고 그림이나 끄적이다가
가끔은 저만치 떨어져 앉았다가
또 화장실을 갔다가
모른척 옆으로 다시 와 앉았다가
하고 있다
운명이라는 말은 쓸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시간이 가면 될 일이고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만 우연히
그래서 나의 모든 것들의 밖에서
그대가 기탄없이 올라와 내 곁에 앉았다는 것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 이외에
당신을 부를 이름이 없다는 것
그뿐이다
열차도 중요하지 않다 때로는
결국은 가고 말 테지 까진 것 이놈이란
풍경도 중요하지 않다 때로는
결국은 바뀌고 말 테지 까진 것 이놈들이란
다만 우연히 온 주제에 바뀌지도 않는 그대
나의 타인아
그대가 온통 나의 심심한 여행을 다 훔쳐갔구나 하며
나는 때로 요일도 한뭉텅이로 바닥에다 흘리곤 했다
그뿐이다
W, P 레오
2018.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