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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Jan 03. 2019

나의 마음에는 박스가 없네

오늘 날씨 맑음

나의 마음에는 박스가 없네
흥정도 못하고 애누리를 당하는
의심받은 기피품
나의 마음에는 박스가 없네
비쌀 거 같다는 사람도 있었지
믿었지
커다란 품을 가져오라고 폼을 잡다가
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진적 많았지
지혜야
나의 마음에는 박스가 없네
부속품도 증명서도 없네
울던 내게 다리에서 주워 왔다던 엄마
페놀 냄새가 나던 시꺼먼 모래톱에 꽂혀 있던 아들
주워오신 거라면 감사해
노력을 들인 거라면 감사해
지혜야
나의 마음에는 박스가 없네
속이듯이 들이밀지도 못하네
공기처럼 맴돌기나 하네
허풍처럼 기다린 시간들
커다랗게 써 놓은 이름들이 자꾸만 생각나 부끄러워
나는 왜 그렇게 늦게 배우는가
지혜야
나의 마음에는 박스가 없네
놓인 곳도 없이
투쟁을 했네
출처에
과정에
결과에
나는 왜 그렇게 홀로 배우는가
나의 마음에는 박스가 없네
어찌 나를 담아가려고
나를 부르는 지혜야
묻지 않고 걸었던 날들이었지
터지면 폭탄이고
불리면 돈이고
시시하면 베개이고
폭신하면 사랑이겠지 뭐
태연한 내사랑
나는 박스가 없는데
나를 용케도 데리고 다니는
고운 목소리
값을 부르는 게 아니라
귀신을 부르는 권위
모르는 것을 부르는 방법을 아는
무당같은 당신
아이야
해서
다시 아이가 되었네
커 보고 싶어
배워보고 싶어
잘해보고 싶어
칭찬받고 싶어
손바닥을 내밀면
내가 산이래도 얼굴을 들이밀게
앉으라면 앉을게
내가 폭풍이라도
흩어질게
당신이 나의 권위
엄마처럼
나를 바보처럼 주워왔네
봉지없이 나를 주워왔네
혼이 날텐데 나를 데려가네
혼이 날텐데 또 나를 부르네
결국은 조용한 날
당신의 목소리

W 레오
P 영화 ‘패터슨’



201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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