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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Feb 23. 2019

나는 개가 아니라 새가 되어도 되겠냐고

그곳 날씨 흐림

내 집과 발음이 같은 곳을 여행할 때

다리 하나가 갈려나가 못 쓰게 된 늙은 개 한 마리가

제 주인집 낡음을 겁 없이 부러워하며 사진 찍던 나를 향해 걸어왔다

풍경이 어그러지고

순간 내가 검은 개의 해에 태어났음도 다 잊고서

1/250 사진도 흔들며 뒤로 물러서는데

이 늙은 개

자기 모습이 제 눈에는 안 보이는지

꼬리까지 흔들며 작은 다리를 너머까지

나는 또 내 모습이 내 눈에는 안 보이는지

가는 물선이라도 가를 려고

엉거주춤 작은 다리를 너머까지

닮아 반가워 다가오는 것들을

나는 나를 못 보아 무서워만 한다

내 집과 발음이 같은 곳을 여행할 때

고국에서 쓰린 메일이 다 왔지만

나는 제목만 보고도 지울 수 있었다

문장을 다 읽지 않으니 

나는 또 지금의 나의 모습을 모르고

나를 불편해하는 이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절뚝이고 있다

피곤한데두

실은 졸려오는데두

이제는 걷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아 올리는 사랑아

나는 개가 아니라 새가 되어도 되겠냐고

나는 틈틈이 노래 연습을 해 보긴 하는데

삶이 슬퍼서

객들만 넘치는 씨월에 앉아 울던 할머니

자랑할 게 없다고 오징어나 구워주던 우리 할머니

나는 줄곳 내달렸는데두

여전히 엄마를 꼭 빼다 닮았다 한다

나는 개가 아니라 꽃이어도 되냐고

봄에만 웃어도 나를 뽑아내지 않겠냐고

사랑의 잠든 손을 꼭 잡고 마는 나는

벌써 자신이 이렇게 많이 죽었다

냄새가 난다 흙 같은 냄새

안 보여도 올라오는 흙 같은 냄새

이 늙은 개가! 휙 돌아보는 곳은 머쓱하니 빈 곳이라

나는 가만히 노래 연습을 해 보긴 하는데


W, M 레오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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