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오 Mar 07. 2019

여기에다는 나를 묻어요

오늘 날씨 오랜만에 하늘

정글 점프왕 인드리는 아찔히 높은 나무 사이를

건너뛰면서 20초 만에 100미터가량을 이동합니다

정글 점프왕 인드리는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법이 없고

가지 위에서 먹고 자고 하다 새로운 잎을 찾아 나무에서 나무로 몸을 던집니다

정글 점프왕 인드리는 가족 단위로 생활을 하는데

아이를 업은 어미가 식사를 다 할 때까지

아비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나무에 매달려 굶주립니다

아비는 배고픔에 어린잎 하나 몰래 따먹다가 어미에게 뺨을 맞고 맙니다

나는 너무나 작은 아비가 통쾌해서 웃음이 다 났습니다

한참을 웃다가

더 오래도록 조용합니다

아비는 참말로 작습니다

나도 참말로 작다 그쳤습니다

아이의 머리는 벌써 그대의 가지 사이에 있고

나는 당신 등 뒤에 서는 일이 많아집니다

나는 오랫동안 찾을 듯 걸었지만

이제는 당신의 뒤를 자주 지킵니다

아비인 나는 가장 멀리까지 걸어가서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결국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는 것뿐이고

꽃은 내가 죽은 곳에서 피는 거겠지요

삶에서 삶을 넘겨받으며 내가 영원을 써내려 갈 수 있을 것도 같았지요

크고 거대한 것에 내 이름을 쓰고 싶었어요

올해 안에서 도는 것들을 그렇게나 미워했구요

하지만 나는 결국 유니클로나 자라에서 산 옷을 입고

올해 안에라도 이름을 올릴 곳을 못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아버지의 얼굴을 밟고 꽃처럼 으스댔군요

너무나 작은 나의 아버지는 이제는 흙 같은 냄새가 납니다

나를 아직 꽃이라고 여겨 꽃 곁에 두고 사진을 즐겨 찍는 그대는

나를 사랑하는군요

사랑은 낮에 꾸는 꿈

이제는 참 멀리 걸어갔으니

여기에다는 나를 묻어요

나는 결국 사람처럼 굴다가 한 자락 비인 것을 다 알았습니다


W 레오

P Eneko Uruñuela



2019.03.07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개가 아니라 새가 되어도 되겠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