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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12. 2019

내용은 번져 종이가 되었다

오늘 날씨 흐림

한 해를 애를 썼고

우리는 소박한 성과를

서로를 반찬 삼아 씹어 먹었다

가려린 힘 하나가 나서

그날 우리는 밤새 울었고

우리의 한 해는 잉크처럼 녹아내렸다

내용은 번져 종이가 되었다

종이에는 시간은 보일지 언정 내용은 없었다

내년으로 가는 것은 앙상한 뼈에 붙은 살과

살에 붙은 사랑하는 말괄냥이들

쉽게 울어버린 남자야

울음을 이길 한 해는 결국 없던 거냐고

부끄럽게 등을 돌린 남자의 겨드랑이 사이로 뻗쳐 나온 팔들을 안 볼래야

메마른 팔에 눈물을 문지르더니

너희 팔에 새빨간 핏줄이 선명해

나는 벌써 배고픈 겨울을 앞둔 밤 봄에 떨었다

겨울에는 환상을 먹고 산다

깊은 동굴까지 스며드는 한기에도 겨드랑이를 벌리고

봄에 우리가 지을 것들을

겨울을 몰아내고

영원한 여름을 지을 것들을

노래해야 한다

들려달고 조를 것들이

오늘은 내 눈치를 보며 잠에 들었다

나는 다만 너희를 취하게 하는 술을 지으며 살 터

쌀 서 말에 누룩 여섯 되

점처럼 작은 동굴들마다

동굴만 한 나무가 있다

우리가 서로를 모르던 시절에는

그 나무들이 가장 컸다


W 레오

P asoggetti



201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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