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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16. 2019

내가 너를 안고 걷듯 하는 그런 춤

오늘 날씨 구름 조금

비극은 사람들의 보편 된 처지를 불러일으킨다

왕도 영웅도 나와 같은 곳으로 내려와 쓸쓸한 등으로 자신의 사람됨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삶을 이길 수 없고 자신의 죽음까지 적당한 울음과 난동으로 자신의 이름을 죽이고 살기로 한다

아무개라는 이름이라도 뭐 어떤가

히어로물은 사람들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나와 같은 약골도 바깥도 바닥도 사람 아닌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연된 계기로 오는 것

그러니 나의 역사는 관계가 없고 나의 행동도 의미가 없고

극장을 나오던 내가 갑자기 순수하게 당첨이 될 수도 있는 것

사람 위의 사람들의 힘도 순간 넘어설 수 있으니 

긴 노력과 계획은 맛이 없고

사람의 악한 행동은 관심이 멀고 다만 간편한 악인들은 기억하고서

조용한 방에서 자주 잠에 들기로 한다

그 모두는 결국 우리를 우리 밖으로 내몬다

우리는 결국이라는 수식어를 우리 앞에 붙이고 조용히 밭을 갈거나

언젠가라는 주문을 입에 달고서 조용히 삶을 흘리고 다니거나 한다

내게 있어 가장 좋은 것은 능동적인 별난 게 아무것도 없는 이야기

사람마다 얼마든지 있었고 또 누구의 내일에서라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그런 사소함들 속에서

작가 양반 이건 뭐 이야깃거리도 안되지 

하던 할머니가 일어서기가 미안하게 열내서 하는 이야기들

영감 자식 강아지 실반지 말린 고추 매화꽃 3월에 내린 우박

술버릇 여자버릇 곗돈

주인공이 어떤 뚜렷한 계기 없이 스스로 자신의 조용한 하루에서

다른 이면을 발견해내고

그 이면을 씹어 짜낸 단물로 겨우 그 밤을 잠으로 보낼 수 있게 되는 이야기들


결국 삶은 견뎌야 하는 것

죽음은 일상 안에서는 내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

나는 겁이 많고

나는 적당히 건강해서

잦은 어떤 날에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고

나는 풍선이 아니고

나는 양칫물이 아니고

나는 나무의 나뭇잎처럼 붙어서 흔들리다 계절에 떨어지고 마는 것

기나긴 여행도 못 되고

커다란 유물도 남기지 못하는

하지만 나 나뭇잎은 춤을 출 수 있다

남이 보아 춤이 아니라 내가 너를 안고 걷듯 하는 그런 춤


W 레오

Christian Stamati



201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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