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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Apr 16. 2019

땅에 닿은 것은 쓰레기

오늘 날씨 맑음

어느 성당이 불타는 것을 밤새 지켜보았다
아파도 울지 못하는 얼굴을 향해
소방관들이 끝없이 물을 뿌렸다
눈에는 불꽃이 이는데
왜 얼굴 위에만 물을 뿌리고 있냐고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뜨거운 얼굴을 식히는 것뿐
불안은 태울 것을 다 태우면 사라진다
화를 가두고
지킬 것은 지키고
얼굴이 무너지면 정말 끝이니 우리 기도를 합시다

늦은 아침 꽃잎을 쓸고 있는 청소부를 보았다
땅에 닿은 것은 쓰레기
간단한 업무지침
울어주지 못한 나무를 깨끗하게 닦아 둔다
관계가 먼 사람들은 어여 여름으로 가라고
다 울지 못한 죽음은 두려움이 되고
밝은 날에 문득 찾아와 고해를 듣자 한다
꽃은 둑 터진 북바람에 한번에 다 피지 못했고
사진 찍는 사람들은 자꾸 자리를 옮기고
웃는 사람들은 슬쩍 자기를 돌아보던 봄이었다

가지 못한 곳들은 다 불에 타고
나는 여기에 안전하다
내가 얼마나 안전하길래
소매치기는 나를 욕심내지 않는다

그림 같은 얼굴은 평범하고
급하게 세운 문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나는
달라진 곳에서 달라진 노래를 불러야지

W, P 레오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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