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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Dec 05. 2019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오늘 날씨 흐림

정오가 채 못 된 시간이었다

이른 점심을 위해 학교를 나와 마트를 찾아 걸었다

학교에서 왼쪽으로 꺾어 휘 데 뾔쁠리에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죽음을 보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한참을 뻔히 바라보았다

햇빛이 묻은 흰 주름을 따라 어림되는 덩치

아 그렇구나


더 이상 급할 일도 없어

쁘히베 데 뾔쁠리에 헝세 썽떼 병원 곁은 피가 흐르는 이에 내어주고 

조금 떨어진 곳이라도 뭐 어때 

수고를 감내하는 구조사의 배려 덕에

우리는 총총걸음 일상 위에서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이를 보았다


빛도 돌리지 않는 앰뷸런스에서

배송을 예약받은 택배처럼 차갑게 들것에 실려 천천히 길을 건너 가신 이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멈추지 않게

좋은 타이밍에 매끄러운 바퀴로 길을 건넜다

병원에는 달려 나오는 이가 없었고

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


죽음이 지나가도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고

그만이 조용히 내렸다


꿀렁이지 않았다

보도를 오르고 내릴 때도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틀고

병원을 향해 왼쪽으로 틀 때도

붙들고 있는 것들이 더는 필요가 없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점심을 거르지 않았다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지하철은 늘 만원이라

때를 놓치면 모두를 밀치고

파흐동 소리를 연발로 내지르고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갑자기 툭 내리면

남은 이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생긴다

가방에 쓸리고

옷이 벗겨진다

달려 나가는 파흐동 소리에

괜찮다는 말도 못 해준다


괜찮다는 말을 못 해줬다

입술을 뗄 만큼 아프지는 않아서

몸을 돌릴 만큼 가까이 있지도 않아서


매일 문은 열리고 

얼마 간의 소란이 있고

문은 닫힌다

조금 넉넉하다가

더 비좁아지기도 한다


글, 사진 레오


201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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