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오 Nov 03. 2019

형의 결혼식 전날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는 꿈을 꿨다

오늘 날씨_한때 흐림

형의 결혼식 전날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는 꿈을 꿨다

아버지는 누군가의 집에서 우연히 값진 것을 발견하셨고

그만 그걸 들고 나오려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아닌 척 제자리에 놓고 나왔다고 분해하셨다

9시 뉴스도 밤잠도 새벽기도도 잊은 그는

이번엔 반드시 값진 그것을 가지고 나오겠다며

온 가족을 다 데리고서 그 집으로 가셨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 반나절을 우리 얼굴만 보다가

마침내 그는 그 값진 것 앞에 섰지만

꿈에서도 바보인지라 이 생각 저 생각에 망설이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는 결국 더 주린 배를 안고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등을 돌린 그 날의 우리는 분명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낯선 시간에 잠을 깬 나는 온통 그의 머릿속만 같다


싫은 곳에 가고 

싫은 마음을 먹긴 했겠구나


우리가 먹였는지 그가 먹였는지 모를

가느다란 가지가 다 잘리는 날

핑계처럼 내가 꾸어 준 그의 꿈을

나는 해몽도 안 하고서 사랑에게 들려주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다 냄새가 다르다

내뱉는 호흡에 따라 말은 냄새가 다 다르다

가벼워야지 아직은 가벼워야지


이곳에서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결석을 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무중력의 땅


좋겠네 하는 이 땅에서

나는 무겁네

발자국마다 다 내가 친 버둥버둥이라서

내가 다 보일 이곳에서

나는 조금 무섭네


W, P 레오

2019.11.03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는 사랑할 줄은 모르는 우리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