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_한때 흐림
형의 결혼식 전날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는 꿈을 꿨다
아버지는 누군가의 집에서 우연히 값진 것을 발견하셨고
그만 그걸 들고 나오려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아닌 척 제자리에 놓고 나왔다고 분해하셨다
9시 뉴스도 밤잠도 새벽기도도 잊은 그는
이번엔 반드시 값진 그것을 가지고 나오겠다며
온 가족을 다 데리고서 그 집으로 가셨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 반나절을 우리 얼굴만 보다가
마침내 그는 그 값진 것 앞에 섰지만
꿈에서도 바보인지라 이 생각 저 생각에 망설이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는 결국 더 주린 배를 안고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등을 돌린 그 날의 우리는 분명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낯선 시간에 잠을 깬 나는 온통 그의 머릿속만 같다
싫은 곳에 가고
싫은 마음을 먹긴 했겠구나
우리가 먹였는지 그가 먹였는지 모를
가느다란 가지가 다 잘리는 날
핑계처럼 내가 꾸어 준 그의 꿈을
나는 해몽도 안 하고서 사랑에게 들려주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다 냄새가 다르다
내뱉는 호흡에 따라 말은 냄새가 다 다르다
가벼워야지 아직은 가벼워야지
이곳에서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결석을 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무중력의 땅
좋겠네 하는 이 땅에서
나는 무겁네
발자국마다 다 내가 친 버둥버둥이라서
내가 다 보일 이곳에서
나는 조금 무섭네
W, P 레오
201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