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오 Sep 19. 2019

사랑하는 사랑할 줄은 모르는 우리가 있다

오늘 날씨 맑음

너는 신비한 마법상자와 같다
무엇이 들어가면 무엇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들어가면 무엇 아닌 것이 나오는

어쩌면 방정식 같은 거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같은 것을 넣는다고 해서
늘 같은 것이 나오지는 않으니
나는 그냥 너를 모르겠다 하고 웃었다

웃음에 웃음으로 답해주다가
좋아한다는 말에 침묵
침묵
침묵이었다
무서웠다

500원을 먹은 자판기라면
발로 실컷 차기나 하고 돌아섰겠지만
왜인지 못 잊어 아침부터 와서 보았다
밥을 굶어 만든 500원을 또 넣고
침묵
웃겼고
웃었다

아까워서
답을 제대로 안 내어주는
네가 아까워서
바보같은 내가 아까워서
나는 늘 거기로 갔다

모르지만 늘 바라보았고
예상했지만 늘 틀렸다
웃겼고
웃었다
무엇을 받고 싶은 지도 잊었다
그냥 재미가 있는 듯
모르는 너와 함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문은 사람이 늘 스쳐지나 갈 뿐이고
사람이 문을 붙잡고 있을 때는
문이 왜인지 열리지 않을 때 뿐이었네
그러니
나는 다만 너의 이상함에 매달려 있는 것

사랑하는 장면이라는 말에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사실 무엇을 하지도 못 했고
나는 사실 무엇을 받지도 못 했다

500원에 침묵
1000원에 환타
다시 1000원엔 침묵
2000원에 침묵
다시 500원엔 콜라
웃겻고
웃었다

답을 내는 게 아니라
다만 함께 있는 것이지

알 수 없는 네 마음과
알 수 없는 내 집착을
같은 그릇에 담아 두는 것 뿐이지

사람들이
단란한 맛집이라며

후루룩 먹고 가는
사랑하는
사랑할 줄은 모르는 우리가 있다

배워서 고향으로 갈 수가 없는
다만 이곳의 물 맛이라며
조용히 그릇에 물을 받아
양념같은 내 마음이나 얹어 보는
비법없는 사랑의 글들이 있다

W 레오
P Ingmar Hoogerhoud

2019.09.19

매거진의 이전글 돈 대신 미안하다고 적고서 나는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