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실은 일년을 살고 만다는 것을 안다

소소한 일상일탈이 빚은 나의 감정 모양, 그 모양

by 모호씨

나는 적당히 내려서는 언덕길에 앉아

거리를 지나가는 차들의 가감속이나

폼을 잡다 망가지는 무단횡단 아저씨나

깔깔대며 쳐대는 여고생들의 어깨따위를 보았다


나는 또한 가로등 그늘이 그리는 수레바퀴나

여전히 계절을 못 숨기는 주책맞은 늙은 나무나

껌딱지 위를 정확히 똥 맞추던 비둘기도 보았다

나는 웃었고 시무룩했고 하품을 하고 기침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너의 시간은 의미가 없구나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말한다

꽃이 피면 곧 질 것을 너는 알고 있니

결국 우린 더 빨리 종말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나는 그것이 무섭다

나는 내가 실은 일년을 살고 만다는 것을 안다


꽃이 지면 열매가 맺히지

허나 착각처럼 열매는 나를 위한 것은 아니야

열매에는 미래가 담겨 있지

허나 착각처럼 미래는 나의 일은 아니야


나는 그것이 무섭다

나는 내가 실은 고작 봄만 살고 만다는 것을 안다


나는 더디게 가자 했다

봄에 봄하지 않고

여름에 봄아니 할 일도 없다 하고


나는 더디게 가자 했다

나는 최고나 된 듯 피고

내 입엔 못 넣을 열매나 남기고 지고 말테니


나는 내가 고작 이 땅에 하나 둘 쯤 남기고 갈 것을 안다

그것은 어쩌면 묘비명에나 어울릴 문장이나

유행을 벗어나고파 한 배경화면 같은 장면이나

닮아서 놀랄 아이나


나는 적당히 내려서는 언덕길로 또 나선다

어느 날 바람이 완벽한 날

나도 더는 못 참고 이대로 좋다 펑하고 터뜨릴지도 몰라

늙어서 주책맞다 놀리기도 하겠지


한 계절이다 경고하시지

알아

계절 안에도 감정은 수만 가지

또한 알아


나는 자연을 벗어나서

조물주나 작가나 된 듯

나는 시간에 비켜 서서

보고서 듣고서 흐뭇하지


오늘이 아깝지는 않아

기능을 벗어난 나는 실로 아이처럼 즐겁다네


봄 오기 전에는 나는 그저 꽃봉오리

내 꽃을 모르는 이여

바람이 불기 전까진 나를 평가하지 마오


보여줄게요 죽기 전엔 꽃



W 상석.

P Thomas Hawk.


201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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