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다 무너뜨리고 그러나 결국은 쌓고 바라보기
사진을 닦는 일을 했던 기억이 없다 싶었다. 어쩌면 그 일이 그저 흔한 일상의 한 조각일 뿐이라 내가 하고서도 다 잊어버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장례를 위해 엄마의 사진을 닦는 일은 정말이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엄마는 나의 탄생보다 먼저 이곳에 나 있었다. 마치 지구나 나라와 같은 것. 당연하다 느껴지고 말던 존재. 그런 존재가 이제 없어졌다.
당연하다 느끼고만 있었다는 것을 달리 말하면 전혀 느끼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그래 나는 엄마를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서야 배워가겠지. 엄마가 뭔지. 엄마의 걱정이 짜증이 사랑이 정말로 무엇인지. 그저 어버이날에 적당한 대충 5만원 언저리의 선물을 생일에는 고민 끝에 10만원 언저리의 선물을 사보내던 주소가 아닌 진짜 내 엄마를.. 그 싸다 놀리던 말투를 그 요란한 취향을 그 급한 성질머리를 그리고 실은 그것들에 가려 못 보던 어떤 진짜 같은 것들에 대해서.. 난 이제야 배워가겠지.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우리의 배움은 언제나 그렇게 한 발씩은 꼭 더 느리다.
학창시절 잠시동안 축구부 생활을 할 때 내가 가장 못 했던 것이 트레핑이란 기술이었다. 동료가 보내 준 공을 힘을 빼고 받아서 내 발 앞에다 떨어뜨리는 기술인데 난 늘 힘이 너무 넘쳤다. 공이 오기도 전에 벌써 몸이 다 딱딱해져서 공을 받는다기보다는 튕겨내는 쪽에 더 가까웠다.
젊은 시절의 배움은 늘 그랬다. 마음은 앞서고 힘은 넘쳤다. 품고 느끼고 이용을 해 볼 시간도 기회도 없이 벌써 저만치를 튕겨 낸다. 무엇 하나 비워놓고 기다려 주지를 못했다. 내 생각을 가득 담고서 무얼 또 배우겠다 교실에 앉았었다. 필요없는 말이지만 트레핑은 축구부를 그만 두고 나서야 익혔다. 더이상 축구가 하루의 일과는 아니게 된 어느 날. 친구들과 심심풀이로 내기 축구를 하던 날. 너무 높이 뜨고 너무 강했던 어느 친구의 패스를 나도 모르게 받아버렸다. 스폰지에 닿은 듯 내 발 앞에 톡.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렇구나 그렇게 어느 날의 새벽이나 오후, 나는 그제서야 엄마를 알고서 참 많이도 쓰리겠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은 그 때는 아니었다.
W 상석.
P Sérgio Rola, 영화 "걸어도 걸어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