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다 무너뜨리고 그러나 결국은 쌓고 바라보기
"형님 거라 좀 작긴 할 텐데.. 챙겨 오는 김에 같이 가져 왔어요."
어느 새 검은 한복으로 상복을 입은 형수가 돌아와 내 곁에 종이 봉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외할머니댁에 맡기고 왔다고 마지막 날에 직접 데리고 오실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집으로 가서 집청소도 대충 했을 것이고 아이들의 며칠 치 짐도 다 챙기고 아마 목욕도 한 번씩 시켰을 것이다. 그리곤 직접 차를 몰아 친정에 데려다 주고 왔겠지. 그동안에 내가 한 것이라고는 빈 빈소에 덩그러니 앉아서 엄마의 사진 위로 마른 헝겊을 휘휘 돌리는 일 뿐이었지.
나는 내가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질 못했다. 형이 사진을 닦으라니 사진을 닦고 있었을 뿐. 어라. 내게 검은 정장이 없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지? 형수는 늘 그랬다.
형수의 나이는 사실 나보다 몇 살이 더 어리다. 하지만 형수와 나는 정말이지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나는 형수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이 때로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학 시절부터 형이 결혼할 때까지 형과 나는 같이 살았다. 그때는 늘 싸우고 괜히 툭툭 건드리고 레슬링같은 것들을 몇십 분씩 했다. 괜시리 누운 몸에 올라타 목을 조르고 두팔을 들어올린 굴욕적인 자세에서 항복을 받아내고..
"저녁은?"
"라면이나 먹자"
근데 그 라면 하나를 끓여주기가 싫어 내기로 축구 게임을 새벽까지나 하고 그러다 지쳐 그냥 잠에 들고.. 그때는 그런 일들이 일상이었다. 친하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8년이었다. 함께 산 날이.. 징그러웠다. 난 정말로 혼자이길 원했다. 사실 별로 더 나은 것은 없었다.
혼자가 된 것은 쓰레기를 보면 실감이 난다. 두 명이서 만들어 내는 쓰레기와 한 명이서 만들어 내는 쓰레기는 정말이지 큰 차이가 난다. 매일 먼저 나갈 일이 있는 사람에게 쓰레기 내다버리라는 말을 꼭 건네곤 했었는데.. 혼자 살면 고 작은 봉투도 쉽게 채워지지가 않는다.
아!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쓰레기통을 작은 걸로 바꿔드려야겠다. 텅빈 쓰레기 통을 보면 괜시리 더 외롭다. 사람의 감정이란 그렇게 의외의 구석에서 무너지곤 하는 것.
나는 아직 괜찮다.
내가 조금은 별난 사람이라 나의 감정의 빈틈을 찾을 의외 구석이라는 게 아직은 내 곁에 나타나질 않았나봐.
W 상석.
P Sérgio Rola, 영화 "동경가족"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