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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진 마세요.

필기의 기술


제가 스타트업에서 임원이 된 후, 늘 펜을 2개를 들고 다녔습니다.


검정 펜 하나, 빨간 펜 하나


처음에는 노트북 하나만 달랑 들고 회의에 들어갔었는데 회의가 길어지면 잠재된 ADHD가 발동했는지, 회의가 끝난 뒤 제 노트북의 메모장에는 저도 모를 몇 개의 단어만 남아 있더군요. 이래선 안될 것 같아서 그 뒤로 노트에 필기를 했는데, 그 뒤로  회의형 ADHD 현상이 덜 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의 C레벨 미팅은 저녁 6시에 밥을 먹으면서 시작했는데, 대표가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중요 시 하여, 각 본부마다 경쟁적으로 50~80장의 PPT장표를 준비해 왔습니다.(간혹 출력이라도 한번 하려고 치면, 프린터에 줄을 선 사람들이 C레벨 회의 문서를 출력하나?'라고 생각할 정도였.) 그 장표들을 하나씩 넘기며 데이터를 보고 토론을 하다 보면 밤 12시가 가까워져서야 회의를 마치기 일쑤였습니다.


다행히 필기가 ADHD뿐만 아니라 졸음에도 특효였지만...  6시간 가까이 얘기하다 보니 여러 전파 사항과 F/U 사항이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표가 지나가듯 얘기한 F/U 사항들이 필기 내용에 뒤섞이게 되고 간혹 놓치는 게 생겼습니다. 그 뒤 깨달았습니다. 대부분의 대표들은 기억력이 좋고, A형인지... 얘기한 걸 놓치면 뒤 끝이 있다는 걸.(제가 대표가 돼 보니, 대표가 되면 그렇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무튼 40 넘은 임원이 학습지 선생 앞의 초딩처럼 혼날 순 없어서 그 뒤로 빨간펜을 추가로 갖고 다니며 대표가 얘기한 내용은 빨간색으로 적었습니다.  매번 회의를 마칠 때마다 종이에 적은 것을 노트북에 옮기고 전체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재정리하었습니다. 그리고 대표가 얘기한 사항은 맨 위에 적거나, 별도로 정리를 해서 우선적으로 챙겼습니다.


다행히 이 습관 덕분에 놓치는 것 없어지고, 업무우선순위 관리가 되다 보니 업무효율이 올라갔습니다. 그 뒤로 업무가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와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종종 이 방법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리더가 얘기한 걸 자주 놓치신다면 빨간펜을 한번 써보세요.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진 마시고요;;; )



ps. 그렇게 3년 반을 회의마다 펜을 2개씩 들고 다녔습니다. 다음 회사를 간 후 ‘머리가 나쁘면 몸이 피곤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회사는 입사 시 기본으로 삼색 볼펜을 주더군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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