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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문집

재즈, 사랑, 연말

by 이경선

마을버스를 탔다. 재즈가 흘러나왔다. 기사님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시는지, 재즈를 특별히 좋아하셔서 재즈 채널을 틀어 놓으셨는지, 아니면 어떤 채널에서 우연히도 흘러나온 것인지, 와 같은 물음을 떠올렸다.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자리 가을밤의 버스 안에서, 재즈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만을 생각했다, 11월의 어느 가을밤, 덜컹거리는 버스 안, 창가에 맺힌 동그란 달, 귓가에 흐르는 재즈의 선율, 과 같은 것들.


냇킹콜의 FOR SENTIMENTAL REASONS, 가 흘러나왔다.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 해서 더욱 깊이 와 닿았을 거라 생각했다.

마을버스 특유의 퀴퀴한 냄새도, 어딘지 모르게 텁텁했던 마음도 모두 괜찮아졌다. 그래, 사람이 행복해지는 일은, 순간이다. 사람의 감정이 기쁨으로 차오르는 일은, 반달 하나 입가에 맺히는 일은, 발끝을 쫑긋 세워내고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는 일은, 순간이다.

버스를 내려 밤길을 걸었다. 차가운 공기 중 떠있는 달 하나와 흐르는 재즈의 음색이 성큼 다가온 연말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름다웠다. 집으로 가는 길을 조금 돌아, 재즈 몇 곡을 더 들어내었다.

사랑을 떠올렸다. 옛 얼굴들과 함께 사랑에 대한 숱한 이야기들이 스쳐갔다. 언제고 다시 사랑해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의 의미에 대해, 어쩌면 한낱 비명에, 욕망에, 위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떨쳐내면서. 그럼에도 믿는 신에게 기도하면서. 그것의 의미와 실존에 대해 생각했다. 두려움, 불안, 회한, 무엇도 배제한 채, 온전히, 오롯이, 순전히도 사랑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다른 어떤 이의 무엇처럼. 옛 밤의 고운 것들처럼.


연말이면 곧잘 재즈를 듣곤 했다. 늘 함께한다만, 연말은 더욱 그러했다. 몇 년 전부터 그랬던 듯하다. 언젠가 연말의 시간들을 재즈와 와인으로 가득 채워냈던 순간들로부터.


옛 시절의 환희와 그리움, 연말로의 반가움과 처연함이 함께 드리우는 밤이다. 그런 밤 재즈를 듣는다. 옛 밤의 사랑으로부터 마음자리 모아낸 재즈를, 고독과 향수를 벗 삼아, 머리맡 오랜 소원과 기도를 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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