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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선 Nov 02. 2021

[시:詩] 백합과 능소화의 이야기

시집 <그대, 꽃처럼 내게 피어났으니> 수록 시



백합과 능소화의 이야기


입하가 지난 오월의 어느 날

백합이 일었습니다


하얀 얼굴 가녀린 꽃잎

향기 그득 머금은 모양입니다


가끔은 당신을 닮았다며 생각도 하곤 했습니다


당신이란 이름이 곁을 서성이던 오월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사뭇 어려워졌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일만이 내게 남아있었습니다


하얀 잎새 하나 당신 어깨에 내리던

늦은 오월

우린 서로의 이름을 마음자리 품어내었습니다


한차례의 장마가 지나갑니다

무성한 백합의 날들이 앞서가고

소서 날 담벼락엔 능소화가 가득 피었습니다


수줍은 얼굴엔 다홍빛이 어렸고

곱게 핀 능소화에 당신은 환히 웃어 보였습니다


무더운 날들이 오가는 칠월의 저녁

한편에는 선풍기 하나 탈탈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창가엔 어슬녘의 노을이 내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 무릎에 기댄 채 저녁을 더듬어 가고

나는 당신이란 여름을 보내는 중입니다






시집 <그대, 꽃처럼 내게 피어났으니>


개정증보판에 수록된

시 '백합과 능소화의 이야기'입니다.


지난여름,

오랜 동무의 결혼식 축시로 적었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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