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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문집

불편으로부터, 깨달아가는 것

by 이경선

다리를 다쳤다. 2주 전이었을까, 등산을 하곤 무릎이 많이 상했다. 생각지도 못한 부상에 일상생활이 꽤나 불편해졌다. 걷는 것도 시원찮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더욱이 힘겹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를 따라잡고자 걸음을 빨리 하고 나면, 건너편에 당도했을 땐 무릎이 시큰거리곤 한다.


등산 전날 잠을 설쳤다. 아니, 거의 이루지 못했다. 불평했다, 왜 잠이 오지 않는가에 대해, 내일의 일정에 대해 토로하면서. 그래서일까, 잠은 더 오지 않았다. 등산을 시작하고, 마치는 순간까지 정신을 부여잡았다. 어지럼증이 있어 자칫 넘어질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산할 시점, 이전의 불평은 온데간데없었다. 큰 성취감이 뒤따랐다. 며칠 뒤, 찾은 병원에서 무릎연골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등산 한번으로 연골을 다쳤다는 게. 루틴처럼 운동을 해온 나로서는 정말 당혹스런 일이었다. 며칠 사이 숱한 감정이 스쳤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생각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하필이면 왜 연골이 다쳤고, 이토록 오래 상처가 지속되는지. 불평만 뱉어놓을 줄 알았는데, 이어가던 생각 중, 사뭇 다른 것이 있었다.


지금의 이 상황이, 요즘의 내게 참 필요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보행이 어려운 상태, 행동력이 떨어진 상태, 이런 상황이어야만 했을 그런 이유. 다치기 전 2주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사뭇 고요해진 나를 발견했다. 이렇다 할 어떤 자극을 갈망하지 않고, 무언가 욕망이랄 것에 휩싸이지 않는, 그런 상태였다. 다치기 전의 나는, 숱한 자극에 치였다, 이를 테면 술과 음악, 운동과 같은 것들. 허나, 지금은 고요해졌다. 몸이 이겨내지 못하니,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또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여 자연히 자극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런 시간이 지속될수록,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더 오래 주어졌다. 스스로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토록 오래 며칠이고 그런 상황에 놓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반가웠다. 그간의 시간엔 떠오르는 모든 일들 중, 본질에 대해 가장 많이 오래 생각했다. 놓치고 있던 것들, 사랑과 불안, 어떤 생각, 감정의 본질과 같은 것에 대해. 지난 2주간 무언가를 잃기도 했지만, 또한 많은 것을 얻었다. 튀어 오르던 일상을 차분히 바라보게 되었다. 이 상태의 지속성에 대해 생각한다. 다리가 다 나아도 지금의 고요함을 이어가고 싶다고, 신체가 활기를 띠어도 다만 정신은 차분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오늘 밤도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글을 쓴다, 돌아보고 앞을 본다. 반성과 설렘이 공존한다. 왜곡된 혹은 놓친 무언가를 내일은, 이후의 날들에는 바로 잡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나 순간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며, 그것의 본질을 오롯이 탐구하여 인지하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무수한 왜곡과 뒤덮인 욕망의 틈에서 부디 본연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기를. 시월의 어느 가을밤, 오늘 하루를 또한 잘 살아내었다고 고요 속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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