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tie Apr 04. 2021

18. 후각 회복

2021년 3월 1일 월요일

후각이 돌아왔다.  

후각을 상실한 후 나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었다. 매일 아침 디퓨져용 에센스 오일 키트를 식탁 위에 꺼내 놓고 하나씩 향을 맡아보곤 했다. 냄새가 나든 안 나든 각각의 오일 병을 몇 초 동안 코에 갖다 대었다. 언제 후각이 돌아오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어디선가 정처 없이 헤매고 있을 후각에게 정신 차리고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물리적인 자극을 반복적으로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첫 증상을 보인 지 3주째 되는 날, 후각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지 7일째 되는 날, 3월의 첫날, 별 기대 없이 갖다 댄 에센스 오일 병에서 라벤더 향이 콧속으로 살며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냄새가 난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후각 능력이 이토록 놀랍고 신기할 수 있다니... 바로 오렌지향이 나는 오일 뚜껑을 열어 코에 갖다 대었다. 그다음 페퍼민트...이걸로 충분하지 않다 싶어 남편의 향수를 손목에 뿌린 후 맡아보았다. 희미했지만 분명히 향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감사했다. 어쩌면 영원히 잃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적어도 장기전을 예상했기에, 나의 감각을 되찾은 순간이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간다. 우리의 오감을 포함하여 사랑하는 사람, 시간, 건강 등.....그래서 그것들의 소중함을 자주 망각한다. 잃고 나서야 뒤늦게 그 소중함을 깨닫고 충분히 감사하지 못했던 나날들에 대해 후회를 한다.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나의 소중한 감각을 한동안 잃었다가 되찾았다. 잃지 않았다면, 혹은 되찾지 못했다면 느낄 수 없었던 존재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눈부신 봄 햇살에 창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길 모퉁이에 쌓여 있던 눈은 사르르 녹아내렸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다람쥐들이 잔디밭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자란 나에게 3월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로 다가왔다. 

새 학급, 새 친구, 새 담임 선생님. 

개학을 앞두고 새로 받은 빳빳한 교과서들을 투명한 포장지로 정성스레 싸고, 앞으로 1년을 함께할 필기류를 새로 장만하며 맞이하는 3월은 나에게 언제나 설렘이었다.


올해의 3월은 나에게 진정 새로운 출발을 의미했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고, 나와 남편 모두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되었고, 잃었던 후각도 되찾았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기분 좋은 셀렘에 미소가 지어졌다. 




Image by makieni777 from Pixabay 

이전 17화 17. 감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