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tie Apr 02. 2021

17. 감사

2021년 2월 28일 일요일

2월의 마지막 날. 

남편의 자가격리가 공식적으로 해제되었다. 

2월은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짧은 달이다. 거기다 설 연휴까지 겹치면 2월의 상대적인 시간은 더욱더 빨리 흐르는 법이다. 지난 일 년, 뉴 노멀의 지루함과 불안함 속에서도 잘만 흘러가던 시간이었는데 2021년 2월의 나의 시간은 참으로 더디 갔다. 


감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가족을 덮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오롯이 남은 감정은 감사함 뿐이었다. 병원 문턱을 넘는 일 없이, 이산가족 마냥 격리 시설로 뿔뿔이 흩어지는 일 없이, 한 공간에서 우리 가족이 서로 의지하며 이 시기를 잘 견딜 수 있게 해 준 모든 상황에 감사했다.


얼마 전 우연히 본 강연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Everything is happening FOR YOU, not to you. 


모든 일은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일어난다는 것. 

강연자의 쉬운 해석에 따르면 내 인생에 일어난 그 일은 나를 엿 먹이기 위함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상 깊었다.  


정말 그럴까. 어쩌면 올해 2월 나에게 일어난 일들은 잘 짜인 각본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내 인생에 꼭 필요했던 사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들처럼 하루하루를 산다. 즉, 하루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내일도 오늘처럼 당연히 나에게 올 것이라 생각하고 오늘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나 또한 그랬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를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백만 년 살 것처럼 어차피 주어지는 하루에 별생각 없이 내 몸을 맡기고 끌려 다녔던 것 같다. 


황농문 교수의 저서 <몰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죽음에 관한 통찰은 평소에 잊기 쉬운 삶의 한시성에 대한 의식의 비중을 높여준다.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의식하면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러면 ‘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가 삶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다. 


2월에 나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죽음과 한시적인 삶에 대한 통찰로 이어져 안이하고 나태해진 내 삶에 브레이크를 걸어주었다. 그리고 더없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해 보는 물리적인 시간과 상황을 허락해 주었다. 


물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루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고, 그 소중한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오늘도 나에게 소중한 하루가 주어졌음에 감사한다. 




Image by Jill Wellington from Pixabay 


이전 16화 16. 후유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