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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동훈 Dec 03. 2019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수선화에게(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기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외로움'을 뜻하는 한자인 고(孤)는 오이가 자라는 모습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마디 하나에 딱 하나의 열매만 맺는 오이의 모습에서 '외로움'은 시작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 대부분의 외로움은 주로 '관계'로부터 기인한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그리고 사회와 사회 사이의 관계속에서 외로움은 발생한다. 단순히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많더라도 느낄 수 있는 모순적인 감정이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비춰진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세상속에서, 홀로 고립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며, 그렇게 보는 시선들이 있다. 그래서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은 세상에 표출하지 못하고 조용히 '울고만'있다.

외로워한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외로움을 견디면서, 즐기면서 사는 것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결연한 의지로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 그렇게 사는 것이다. 외로움을 견디며 차근차근 극복해갈 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삶에 의미가 생기고 가치있는 삶이 되어가는 것이다.
 
외로워한다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주위에서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이다. 외로운 우리는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게 된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보려고 한다. 시야가 넓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를, 주변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다. 똑같이 어떠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서로 교감하고, 서로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 외롭지 않으면, 한정된 시각에 익숙해지고, 안주하며, 눈물 흘리지 못한다. 외롭기에 아파할 수 있고, 누군가의 아픔에 눈물 흘려줄 수 있는 것이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철저한 외로움을 통해 땅만보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보다 고개를 들어 하늘과 주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아픔을 보고, 남의 아픔까지 볼 수 있는 것이다. 서로 극복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는 것이다.
 
만약 지금 외롭다면,
그것을 부정하지 말고 거부하지 말자.
받아들이고, 즐기자.
 
오이는 외롭게 자라지만 결국은 당당하게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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