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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동훈 Dec 04. 2019

슬픔이 기쁨보다 강하다

정호승(슬픔이 기쁨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지 않은 
가마니에 덮힌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동정’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Compassion’은 라틴어로 ‘함께’를 의미하는 접두사 ‘com-’과 고통을 의미하는 어근 ‘passio’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Compassion’, 함께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다. 
  
함께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즉, ‘공감’한다는 말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관심하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고통스러워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 추위에 떨고 있는 길거리 좌판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기 위해 애쓰고, 얼어 죽는 동사자들에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못한다. 함께 울어주지 못할망정, 자신만을 위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혼자 즐거워하는 사람, 기쁨에게 슬픔을 준다고 한다. 슬픔의 평등함을 보여준다고 한다. 공감한다는 것, 타인의 고통을 보고 슬퍼한다는 것은 어둠 속의 상대방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각자가 각자의 눈높이에서 만끽하는 즐거움과는 다르게, 슬퍼한다는 것은 고통받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낮아지는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함박눈이 멈추는 것이다. 함박눈은 자비가 없다. 배려없이 내리며, 순식간에 모든 것을 덮는다. 쌓인 함박눈은 벌거벗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지붕을 내려앉히기도 한다. 공감한다는 것은 봄눈이 내리는 것이다. 내리면서 녹아버리는 봄눈처럼, 따듯함으로 녹아지는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어둠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어둠 속에서 나를 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어둠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타인의 어둠을 이해하고 어둠조차 사랑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더 큰 빛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동점심을 갖는다는 것, 공감한다는 것은 감정을 공유하는(Co-sentiment) 것이다.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불행뿐 아니라 다른 감정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고통을 공유하는 것을 뛰어넘어 행복, 즐거움까지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혼자만 앞서가기보다는 뒤처지고 뛰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기쁨은 슬픔이 있어 존재한다. 슬픔이 없으면 기쁨도 없다. 슬퍼할 수 없다면, 기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슬픔의 힘은 대단한다. 기쁨과 슬픔은 ‘양립 가능성’(Compatible)을 넘어 필수적으로 양립(Must Co-exist)해야한다. 
  
슬퍼하자.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눈물흘리자
함께 고통스러워하자. 그래서 더 값진 기쁨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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