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은 그날 이후, 기-6)
나는 이천육백 명이 일하는 조직 안에서 팀장이었다.
우리 팀의 일은 전체 부서의 업무를 살펴보고, 그것에 맞게 조직을 구성하고 인원을 배치하는 역할이었다. 새로운 일이 생기면 새로운 과나 팀을 만들거나 통폐합해서 전체 일이 막힌 곳 없이 돌아갈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 업무였다.
조직도 시대 환경에 맞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생물이란 말을 한다. 신규 업무는 점차 많아지니 조직은 계속 커지고, 우리 팀으로도 새로운 업무가 많이 떨어지고 업무 부담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속한 조직에서 하는 일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이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느낌이라 그런지 꽤 흥미롭고 보람찼다. 그러는 사이 내 몸속 장기의 조직은 돌연변이들이 자꾸 출몰하고 있는데 알아채지 못했다. 내 몸에 대해서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던 셈이다.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집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미뤄두었던 정수기, 공기청정기 필터를 주문하는 일이었다. 이불을 빨고, 손이 잘 안 가는 집 안 곳곳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었다. 깨끗한 물과 공기로 내 몸을 채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텐데, 나는 그것들을 무엇을 하느라 미뤄두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 ‘무엇’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네 가지로 분류된다고 했다. 중요하고 급한 일, 중요한데 급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 않지만 시급한 일,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 보통의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으면서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정작 중요한데 급하지 않은 일을 등한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 상황을 계속 이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큰 난관에 봉착한다. 나 역시 기억도 나지 않는 일 때문에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미루어놓은 것이 태반이었다. 나는 이 치명적인 오류가 몸 안에 나타난 운 나쁜 케이스다. 이렇게 큰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할 거면서.
예전에 정년퇴직하는 분들의 퇴직기념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30년 이상의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분들을 모시고, 한 분 한 분 인터뷰하듯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어나간 행사였다. 앞으로 무얼 하며 지낼 것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한 분의 대답이 주목받았다.
“퇴직 후엔 아내 000씨의 종으로 살려고 합니다.”
참석한 많은 사람이 빵 터졌다. 바로 옆에 아내가 계셔서일까. 그 말을 듣고 대화를 주재하시던 사장님께서 즉각 응답하신다.
“그렇죠, 사람은 살아남으려면 환경에 바로 적응하며 변해야 하죠.”
그 말씀에 또 한 번 빵 터졌다.
나 역시 지금의 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환경에 최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태세전환 해야 한다. 아침 알람을 네다섯 번을 끄며 마지노선의 시간에 후다닥 일어나 씻고 몸을 추스르고 일터로 향했었다. 먹는 것은 혀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들로 채우고, 퇴근 후에는 정신의 노고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알코올을 들이부었다. 야근하는 날이면 늦은 시간에 탄수화물로 뇌에 포만감을 주며,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위와 장에 탄수화물을 남겨둔 채로 잠이 들었다.
이제는 알람을 모두 끄고 몸이 원하는 시간에 일어난다. 일어나서는 핸드폰 앱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고 환기를 한다. 창문에서부터 거실 안쪽, 집의 깊은 곳까지 신선한 공기가 들어갈 수 있도록 공기가 가는 길목을 방해하는 모든 물건을 정리했다.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십 분 정도 소요되는 스트레칭을 한다. 몸속 림프의 중요성을 알지도 못했는데, 림프 순환에 도움 되는 마사지를 한다. 예전에 건강 관련 영상을 받았을 때는 일하느라, 노느라, 쉬느라 등한시했었다. 이제는 몇 번을 돌려가며 건강에 대한 정보를 집어넣는다. 몸을 건강하게 움직인다.
아파지고 나서야 오래 살아남기 위한 태세전환을 해 본다. 추위에 살아남기 위해 지방으로 몸을 키우는 북극곰이나 나뭇잎을 따먹기 위해 목을 내빼는 기린이 되어야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된 공룡이 되지는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