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석, 땡큐

(총 맞은 그날 이후, 기-8)

by 뷰리플기러기

서울 병원의 진료를 마치고 인터파크의 뮤지컬 티켓을 마구 검색했다. 왜 그랬을까. 몸속에 암세포가 있다지만 체감은 전혀 하지 못하겠고, 서울 가면 뭐라도 하고 와야 한다는 ‘서울병’이 꿈틀댄 날이었나보다.


잔여 티켓이 남아있던 공연 중에서 샤롯데씨어터에서 하는 헤드윅 공연에 마음이 갔다. 한 자리만 예약하는 것이라 그런지 당일 예매한 것에 비해 운이 좋게 무대가 잘 보이는 앞자리의 행운이 찾아줬다.

그날 공연의 주인공은 유연석이었다. 나에겐 ‘슬기로운 의사 생활’ 속 성자의 모습이 유연석의 마지막 이미지였는데 성전환수술에 실패하고 여러 고행의 길을 겪으며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으로 다가오다니. 인생 전환기를 맞이한 내가 변화하는 나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시점에.


예술을 접할 때 주책맞게 눈물이 날 때가 종종 있다. 도파민보다는 뇌가 ‘탁’하고 깨우쳐지는 느낌이 맞겠다. 첫 충격은 오르세미술관의 고흐 그림이었다. 백 년 전 고흐의 붓의 터치 하나가 세밀하게 보이는 그림이었다. 그림은 책으로 보는 것이 아니었다.

호주 여행을 갔을 때도 오페라하우스에서 뭐라고 구경하고 와야 한다는 생각에, 말이 안 통해도 지장 없는 무용 공연을 봤었다. 간송 미술전에서 신윤복 미인도를 봤을 때는 더 큰 충격이었다. 머리로만 외웠던 단순함의 아름다움이란 것을 전율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삶이 무료하단 생각이 들거나, 큰 변화가 없거나 마음이 지치거나 할 때, 가끔 예술의 문턱을 기웃거리는 것은 나에게 기대치 못한 전환을 선물해 줬었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는 다른 위로였다. 허영심일 수도, 허세의 경계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술이 가져다주는 위로는 잔잔하면서도 생각보다 힘이 컸다.


국영수를 중시하고 살았던 세대여서 그런지, 아니면 가장 돈이 들지 않는 엉덩이 힘을 진로의 거름으로 삼아서 그런지 예술은 부러운 사람들의 영역이었다. 아이 태명을 예술이라고 지었던 것도 ‘너는 엄마가 못 간 서울대를 가라’의 다른 버전이었을지 모르겠다.


문화와 예술의 힘으로 병으로 굳어진 내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펴 본다.

이름도 하필,

유연~석,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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