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은 그날 이후, 기-10)
암 선고를 받고, 치료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다.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생활 패턴, 식습관 등을 조금씩 고쳐나갔다. 주 치료 병원을 정하고, 몸 구석구석을 검사받았다. 암 환자로 등록을 하니 건강보험에서 산정 특례 등록이란 걸 해 준다. 5년 동안 암 치료에 대한 본인 부담금 중 10%만 내게 된다. 20년 동안 월급에 비해 건강보험료를 많이도 내면서 1년에 병원 갈 일을 5일이 채 되지 않았던 기간 동안 나도 모르는 억울함이 있었는데 이렇게 보답을 받는다. ‘억울함이 아니고 감사한 일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다. 이제 병원에 입원해야 하니 집도 비워야 하고, 치료를 하면 머리도 빠질 것이다. 누가 봐도 이젠 암 환자인 게 티가 나게 되겠지.
마지막 암밍아웃 대상은 고3이 된 아들 녀석이었다.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민족적 DNA가 뼛속 깊이 박혀있는 평범한 엄마다.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뒷바라지해도 모자랄 판에 아이가 공부 외로 신경 쓰일 일이 생겼으니 입이 안 떨어졌다. 몇 날 며칠 끙끙댄 후에 치료를 오래 받아야 할 상황임을 아이에게 밝혔다. 엄마가 아파서 미안하다는 말이 저절로 붙었다.
“엄마, 그게 왜 미안할 일이야. 나도 내 자리에서 열심히 할 테니까 엄마도 치료 꿋꿋하게 잘 받아.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잖아. 우리 다 파이팅 하자.”
듣는 순간 엄마를 향한 슬픔도 아들을 향한 걱정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선고의 순간 나를 위로했던 각자도생이라는 깨달음을 이 녀석은 스무 해가 되기도 전에 깨닫고 있단 말인가.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자라 있었다.
아이에게는 내가 해 주는 것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미안하고, 끙끙거리며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도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원하지 않는 죄인이 되는 마음이었다. 아프면서까지 미안할 일은 아닌데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이 엄마의 이름값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 걱정하지 말고 각자 위치에서 잘하자며 이렇게 자식의 이름값을 해 준다.
그러면서 다음날부터 쪽지 하나를 써준다. 앞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하나씩 써준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가르쳐 본 적이 없는데 이 아이는 어디서 이런 걸 배웠을까.
“신은 고통이란 이름으로 선물을 포장한다.”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진다.”
“병원 잘 다녀와, 나도 힘낼게.”
“엄마, 스타티스 꽃말 찾아봐.”
하루하루 웃음이 난다.
정말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은 제쳐두고 나만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살길먼저 꾀하면 된다. 각자 자신 앞에 주어진 것을 하나둘씩 헤쳐나가면 될 일이다.
며칠 뒤 거울 앞에 메시지 하나가 또 붙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니체-’
“아들, 이것도 엄마 힘내라고 적어놓은 거야?”
“아, 그건 내가 헬스 하면서 무게 많이 들 때 생각하려고 붙여놓은 거야.”
그렇지, 인생 각자 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