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

(총 맞은 그날 이후, 승-1)

by 뷰리플기러기

이 녀석, 표리부동한 놈은 아닌가 보다. 초음파로 세포의 모양을 보면 그것이 암세포인지 아닌지 의사들에게 느낌이 온다고 한다. 암은 표현 그대로 모양마저 나쁘게 생겼기 때문이다. ‘나 비뚤어질 테다’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녀석이라니 겉과 속이 같은 녀석. 그 비뚤어진 것들 때문에 내 마음도 찌그러진다. 살아오면서 마주쳤던 많은 사람, 사건, 감정을 ‘암의 발생’이라는 함수에 대입해 본다. 무엇 때문에 젊은 나이에 제 몸 하나 지키지도 못하며 번잡하게 살았던가. 떠오르는 모든 것이 다 암이라는 결괏값의 원인 같다.



암을 도려내기에 앞서 크기를 줄이는 항암이 시작되었다. 알게 되었다. 사람은 예상하는 최악의 일보다도 미지의 일 앞에서 더 공포를 느낀다는 것을. 가벼운 숙제라 여겼던 것은 나의 큰 오만이었다. 첫 항암치료를 앞둔 나의 감정은 안전장치 없이 심해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유년기 시절 엄마가 처음 내 눈에서 자리를 비웠을 때 느꼈던 공포도 이만큼이었을까. 독성으로 가득 찬 항암제가 내 몸에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느껴지는 두려움이었다. 어떤 사람은 주사를 맞으며 쇼크가 왔다고 하고, 손발톱이 빠졌다고도 하고, 항암제가 혈관을 뛰쳐나와 주변 피부를 괴사시켰다고도 한다. 도움 안 되는 정보들이 나를 극한의 감정으로 몰아간다.


내가 가진 마음이 두려움이든 대범함이든 올 것은 온다. 나를 치료하기 위한 항암제가 노란 비닐 속에 숨어 다가온다. 밝은 색으로 위장하고 있어도 시커먼 정체가 훤히 보이는 저 주사액이 나를 살린다고? 가슴에 퍼져있는 나쁜 세포들을 죽이겠지. 덕분에 옆에 있는 멀쩡한 애들도 연좌제로 끌려가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내 머리카락 한 올마저 남김없이 빼앗아 갈 저 치료제가 나를 구원한다면. 믿으라니 믿을 수밖에.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여기에서 실감한다.


이 와중에 삶의 선배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같은 병을 먼저 치료한 친구가 이 과정만 잘 견디고 나면 새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응원해 준다. 나는 새로 태어날 수 있을까. 사람의 세포는 삼십 조 개, 이 중 삼백억 개는 하루에 교체된다고 한다. 몸의 일 퍼센트가 매일 새로워지는 것은 맞겠다. 고장 난 세포들을 싹 갈아 끼워 줄 부스터 주사를 동시에 맞으니 더 빠르게 환생할 수 있으리라.


평생 수액 한두 번밖에 꽂아보지 않은 신선한 팔뚝을 넙죽 내어주었다. 간호사가 팔뚝의 튼튼한 혈관을 찾아 바늘을 꽂았다. 노란 액체가 링거 줄 꼭대기부터 천천히 내려와 흰 살갗을 뚫고 들어간다. 순간 팔뚝에 꽂아놓은 링거 줄이 탯줄 같았다.



사십육 년 전 엄마와 연결된 탯줄에 의지하며 숨을 쉬고 몸을 키웠다. 자궁 속에서 콩알만 한 몸의 나쁜 것들은 탯줄을 통해 내보내졌다. 엄마와 나는 탯줄 동맹으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열 달을 함께 나누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보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탯줄의 끊어짐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감사함을 망각했다. 첫 탯줄이 끊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새롭게 태어나려고 링거 줄 하나에 의지해 있다. 두 번째 탯줄이다.

자아가 있어서일까, 창조의 고통이 있어서일까. 두 번째 생명을 받는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능하다면 엄마 자궁 속 그 작은 녀석에게도 묻고 싶다. 너의 시간도 이런 힘듦이었냐고.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이냐고. 몇 배로 키가 자란 만큼 인내심과 의지도 향상됐다고 믿고 싶다. 그 힘은 이 노란색의 탯줄 무게를 견뎌야 할 테니까.


그렇게 새로운 조각들로 나의 몸을 갈아 끼우고 있는 동안 거리를 두고 싶었던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서 격려와 응원을 받는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이 내 가슴에 총을 쏘았다는 모난 마음이 먹물처럼 퍼져가고 있었다. 내 마음 편하려고 손해 보아가며 이어나간 인연들, 내 아픔의 원인 같았다. 자식, 부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마음을 닫고 물리적 거리를 두었었다. 그런데도 잘라낼 수 없는 인연들은 기어이 다시 돌아온다.


내 몸보다 먼저 걱정이 되었던 고3 아들은 아침마다 쪽지 하나씩을 건네며 새로운 의지를 넣어준다. 어떤 날은 희망의 메시지로, 어떤 날은 자신의 사진으로 웃음을 준다. 아이와 연결된 탯줄도 오래전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에너지의 삼투압이 전환되었는지, 이제는 아이에게서 공기와 양분을 나눠 받는다. 나의 숨결이 된다.


가족과 친구들이 기능이 온전치 못한 내 몸의 틈새를 메꿔준다. 병원에 가는 발이 되어주고, 건강한 음식을 보내주고 함께 먹어주며 뼈와 살을 만들어 준다. 곁에서 갈라진 마음을 꿰매어준다. 병으로 찌그러진 내 마음이 그들의 온기로 펴진다.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번잡스럽게 살았던 모든 시간이 아픔의 원인 같았는데, 밀도 높은 관계일수록 따뜻한 에너지가 되어 준다.


두 번째 탯줄은 내 몸에 뿌리를 두며 밖으로 뻗어 나가 사람들과 이어진 수많은 가지였다. 탐스러운 열매들만 상상하다가 벌레를 보고는 그 두려움에 가지를 뻗지도 않으려고 했던 나. 썩은 부위를 도려내면 더 튼튼한 가지를 만들 수 있는 것을.



오늘은 집 근처 황톳길을 맨발로 걸었다. 야트막한 산의 둘레를 걷는 코스다. 길옆으로 금계국과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초록 속에서 피어난 노랑과 하얀색의 조합이 아이의 마음으로 회귀시켜 준다. 오십여 분 동안 걷다 보면, 시원하게 뻗은 직선도 있고 구불구불한 곡선도 있다. 곧게 뻗은 길이 빠르겠지만 꽃을 볼 때는 곡선의 미가 더해진 길이 더 아름다웠다.


내 삶의 속도는 잠시 멈춰졌고, 방향은 틀어졌다. 이제 빨리 갈 수는 없다. 대신 옆을 보는 시간이 늘고, 안으로도 더 깊어진다. 내 몸을 휘감고 있는 수많은 탯줄 속에서.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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