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은 그날 이후, 기-9)
나는 청송 심가 안효공파 25대손이다.
안효공은 세종대왕의 장인어른인데, 태종 이방원이 외척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여 세종 즉위 직후에 숙청되신 분이다. 그분의 따님 소헌왕후와 세종대왕 사이에서 8남 2녀를 두고 금슬도 좋았다는 사실을 보면 왕후는 참 속이 좋으신 분이다. 그야말로 왕관의 무게를 견딜 줄 아시는 현명하신 분이라 생각하고 싶다. (요즘 세상엔 가족 건드리면 당장 이혼감…)
강원도를 지나는 길이거나, 프리미엄아울렛이 핫플이던 때 경기도 이천을 가면 가능하면 세종대왕릉을 들렀다. 절도 마찬가지만, 왕릉의 장소는 경치로만 보면 힐링 되는 장소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세종대왕과 함께 우리 조상님, 소헌왕후가 같이 계시기 때문이다. 뭐 조선 말기에 양반의 족보를 돈으로 사지 않았다는 전제의 얘기지만, 우리가 떵떵거릴 정도로 잘 사는 게 아닌 게 보면 돈으로 사진 않았을 것이란 추측을 해 본다.
내가 치료받는 병원 옆 광교역사공원 안에 우리 가문의 시조 안효공께서 잠들어 계신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는데 진료를 마치고 그곳으로 발이 향했다. 그날 알게 되었는데 안효공심온선생묘는 경기도 기념물로까지 지정된 국가유산이었다. 그날은 관리 문제로 안까지는 들어갈 수 없어서 멀리서 인사드리고, 광교 박물관과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좀 걸었다.
조상, 핏줄에 대해 생각해 보자니 유전이란 단어가 당연히 먼저 떠오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만큼 유전을 귀에 쏙쏙 설명하는 말이 있을까. 나는 6백 년 전의 이분으로부터 어떤 유전을 물려받았을까. 그 세월 동안 수많은 유전적 변이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처절한 이기적 유전자의 본능으로 점철된 것이 ‘현재의 나’이겠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나’, ‘취약한 나’의 일정 부분은 저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것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일부분은 또 내 아이에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나는 유전을 통해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경험이나 기억도 내려오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최근에 본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주인공 에렌이나 귀멸의 칼날 주인공 탄지로도 아버지의 기억에서 조상의 기억을 본다. (애니로는 신빙성이 없나? )
실제로 미국 한 연구팀이 9·11 테러 생존자 연구를 한 미국 한 연구팀이 테러 사건 당시 현장에 있다 트라우마를 갖게 된 임신부들을 연구한 결과 그녀들의 아이들의 스트레스 조절 호르몬 수치가 상대적으로 낮고, 이것이 다른 아이들보다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진 결과를 가져온다는 연구를 했다고 한다. 피는 참 무섭다.
그렇다면 나 역시 좀 더 좋은 생각, 좋은 경험, 좋은 기억들을 유전자에 담아 아이에게 내려줘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충실했던가. 지금이라도 내 아이가 심신이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노력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상님 곁을 산책했다. 현재 아픈 나로서는 조상님께도 구복을 하고 싶어 들렸던 이기적 행동이지만.
조상님, 저 25대손 아무개입니다.
저 지금 아프고 이제 치료 시작하는데요, 저 좀 잘 살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