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군인의 딸>로 태어난 것이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냐고 항변했다. 언론에 학교폭력이 보도되는 것만 보도되고 쉬쉬해서 그렇지 숨겨진 학교폭력이 공개되는 학교폭력 보다 4배는 많다는 것이 통계가 보여준다. 빨래골 여중 1 짱 한상미 아빠 한남훈 검사가 검찰총장 후보가 되었다. 국회청문회에서 공개된 것이지 학교 선생이나 교감, 교장 심지어 조서작성하는 지구대 순경조차 그녀 편이었다.
검찰총장 청문회가 열리자 엄마는 빨래골 여중시절 학폭 사연을 팩스로 야당의원실에 보냈다. 의원실에서 감사하다고 전화가 왔다. 청문보고서가 무산되었고 낙마했다. 그런 사람이 검찰총장하면 얼마나 많은 <유검무죄 무검유죄>가 또 만들어졌을까 끔찍 그 자체였다. 한 검사 낙마 뉴스에 우리 집은 만세를 불렀다. 낙마를 축하하는 가족 파티를 했다.
전학 가는 곳마다 텃새들과 싸웠다. 엄마, 아빠 속상해할 것을 생각해 처음은 숨겼다. 동생이 맞는 것은 참을 수 없었 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돈만 있다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말은 쉽다. 천만의 말씀이다. 당신이 이 세상 모든 돈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지구에 혼자 남았다 면 무슨 행복이 있겠는가? 공무원, 군인을 은퇴하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 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호미 한번 낫 한번 잡아보지 않은 사람이 농사냐 짓지 하는 것은 건방진 소리고 원주민에게 <공공의 적>이거나 <날아온 적>이다.
전출 가는 곳이 동부전선이면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이면 서부전선에서 그곳 수준에 맞게 옷을 입으라고 하는 아빠의 말을 무시하고 엄마는 무조건 명동 백화점에서 옷을 사서 입혔다. 모택동어록에 물고기가 물을 떠나먼 살 수 없다고 한 말은 주변 환경에 나를 동화시키라는 의미인데 그걸 모르고 딸을 최상의 옷으로 입혀 촌애들에게 엄청 시달림을 당했다.
소설이니까 공부 잘한 것으로 표현했지만 학년수 보다 전학 간 학교수가 많으니 공부가 잘 될 리가 없었다. 학교현장에서 선생님이 아무리 유능해도 교육으로 되는 것이 있고, 교육으로 될 수 없는 것이 있다. 교육으로 안 되는 것을 국가가 눈속임하고 있다.
학습으로 몸으로 가르치는 태권도, 유도, 검도는 가르치면 된다. 텃새들과 싸워 일방적은 로 맞았다. 하지만 동생이 맞는 것은 참을 수없었 다. <파랑새 검도장>에서 검도를 배운 후에는 전국 어디를 가도 두려움이 없었다. 중령이나 대령으로 진급을 했으면 더 많은 전학을 다녔을 것이다. 예비역 소령으로 전역을 한 것은 남매에 게 행운이었다. 장교로 대령이나 장군이 아닌 소령을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별을 달고도 자신이 명령한 것에 책임도 못지는 똥별 보다 예비역 소령이 백배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을 사실로 밝히는 것>이 왜 죄가 되는가? 국회에서 법을 만든 의원들은 학생시절 국어 공부를 굉장히 못하던 사람만 국회로 데려왔나 국회의윈들의 국어 선생을 추궁해야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적시한 것이 왜 죄냐고요? 친일파를 친일파라고 쓰고 매국노를 매국노로 쓰는 것이 왜 죄인가 법을 만든 국회에 항변하고 싶다. 외국에 이런 법이 있으니 베껴서 만들었다면 지금이라도 고쳐라.
법과 진리가 선진국이나 유럽이나 미국서 만들었다고 한국인에게 그 법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는 법을 만든 국회의원을 찾아 소설에 실명을 쓸까 하다가 국회에 갈 시간 이 없어서 생략했다. 뇌물을 뇌물이라 말도 못 하는 뇌물공화국에 살고 있다. 지금이 아비를 아비로 부르지 못하고 홍 대감으로 부르는 조선시대인가?
인생에 행복은 군번순도 성적순도 아니라는 것을 어린 시절에 알려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세상을 살다 보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과 돈으로 해서는 안될 일이 다는 것을 소싯적에 경험했다. 보통사람들은 학년은 5학년인데 6번의 전학을 다니면서 공부가 되었겠느냐? 하겠지만 책으로 공부하는 것은 전학 없이 공부한 학생보다 떨어졌지만 공자 말씀처럼 배우는 것이 즐겁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전학을 많이 다닌 것이 교육적으로 좋았다고 생각된다.
전교생 학생수가 20명 이하인 곳에 전학을 해서 폐교 위기에서 학교를 구할 때는 증조할아 버 지가 아편 팔아 번돈을 김구선생에게 군자금 드릴 때의 뿌듯함이 연상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사람 소중함을 모르는 사장이 미웠다. 사람 한 명의 소중함을 소싯적에 터 득했기에 직장에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당하는 시절에도 당당하게 할 말하고 뽑혔다. 전학을 다닌 중에 행복한 학교를 뽑는다면 <강림중학교> 시절과 마지막 전학인 <김포청솔고등학교> 시절이다.
강림에서는 전교생수가 적고 학급도 작다 보니 선생님 한 분이 두세 과목을 가르쳤다. 전공은 잘 가르쳤지만 전공이 아니면서 담당한 과목은 선생 님이 EBS에서 공부를 하고 가르친 것을 안다. 학생들 어느 누구도 그런 선생님들에게 실력 없다고 말하는 학생은 없었다. 국어를 담당한 이유나 선생님은 <교과서를 던져버린 국어수업>을 했다. 강림의 산과 들을 돌아보고 관공서를 견학시키면서 관공서 공문을 사용 목적과 작성방법을 가르쳤다.
아빠에게 20년 전에 들었던 말 신병교육대 입소자 600명 중에 300 명이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등본 한 번 떼지 않고 입소했고, 등본과 초본을 구분 못하는 훈련병이 100명이었다는 말을 기억하고 이유니 선생은 수업에 적용했다.
교장선생님과 다른 과목 선생님 양해를 구하고 국어수업은 1학년부터 3학년 배정받은 시간을 하루 종일로 묶어서 체험학습을 병행한 국어수업을 했다. 도시의 체계가 잡힌 학교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수업을 <강림중학교>에서 처음이자 마지 막으로 하고 실천하고 내가 졸업하고 북원여자중학교로 전근 갔다.
해운대 3 경비중대장 시절 맥슨자동응 답전화기에 녹음을 하고 가서 엄마가 욕한 대상이 바로 <이유나 선생>이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내색 없이 졸업하고, 물론 지금까지도 엄마, 아빠에게 도 입 다물고 지낸다. 왜냐하면 강림중학교 졸업은 아빠 없이 졸업했다.
지금은 사라졌는데 그 시절은 장교들이 전출 가면 그 부대에서 먹고 자고 1주일이나 2주일을 그 짓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강림중학교 졸업식인 2월 16일이 아빠 영내대기 기간이었다.
열아홉에 여군대령 직책을 해봤기에 인생이란 내가 안다고 다 말하고, 본 것이 다 진실이고, 내가 행하는 것이 정의라고 직급 높은 선출직 공무원, 선대부터 물려받은 재벌 총수들은 말한다. 그 총수에게 직원으로 월급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과 다른 생각을 열아홉에 터득했다.
그 시절 유명한 말이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고 했다. 작은 아버지가 그 회사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새벽 7시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하라고 했다. 7시에 출근한들 공무원이 전화를 받을 것이며 협력업 체가 전화를 받을 것이야? 과장연수를 마치고 소감문에 회장님 어록에 돌직구 던지는 소감문을 쓰고 퇴사했다. 고향 땅에서 트랙터를 구입 2만 평의 농사를 지의면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다.
언제부터 이 나라는 한정된 기간을 위임받은 권력이 종신권력을 지낸 박정희 대통령이나 김일성 수령으로 착각한다. 한정된 기간에 할 수 있는 일만 발언을 해야 하는데, 박정희나 김일성 수준으로 통치할 어록을 쏟아놓고 정권이 바뀌면 후속 예산이 삭감되어 짓다만 흉물만 늘어나는 <흉물공화국>이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산전수전 다 경험했다. 회사에서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을 하였다. 최근에는 이력서를 검토하고 서류전형을 하고 면접관으로 활동한다. 입장이 바뀌었지만 어린 시절 전학을 다니면서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느라 몸부림친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상황을 질문 던지고. 순간의 답변 속에 몸으로 하는 대답인지 머리와 입으로 하는 대답인지를 간파하고 합격자를 찾아낸다.
열아홉 여군대령은 가장복장으로 하루 경험이 뭐 그리 대단하겠어하겠지만 어느 조직에 가서도 직급에 주눅 드는 일 없이, 당당하게 일처리 하고 할 말 하고 사는 직장인이 된 것은, 여군대령 경험 때문이다. 대부분 직장인들을 할 말 못 하고 산다. 혹시 이 말했다가 불이익과 퇴사 후 다른 회사에 나쁜 소문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걸 잘못된 회사 대표들이 악용하는 것이다. 연봉은 안 올리고 애사심이라느니 주인정신을 강조한다. 그런 대표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정주영, 박정희도 아니면서. 흉내 내지 마라고 했다. 아빠와 엄마 부부싸움 관찰한 결론인데 절대로 결혼 전 연애 이야기, 맞선 이야기는 각자 관뚜껑 덮을 때까지 함구하는 것이 가정의 평화어 기본이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김경희, 김미자, 김미숙, 고지연, 곽형신, 이유나 등에 막연한 질투심이 가득 차있다. 남편의 후배이고 강원도 임용시험에 합격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선생을 막연한 질투심으로 평생 살고 있다.
아빠가 아무리 잘해도 화가 나면 여자 이름팔이 코스프레였다. 남편으로 아빠로 지구에는 없고 우주별에서나 구할 그런 아빠임에도 만족을 못한다. 고민이 되었다.
뱃속에서부터 열아홉까지 본 대로 느낀 대로 썼다. 3수는 아빠가 공부를 못해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는 시대를 잘못 만난 피해자라는 것에 공감했다.
엄마가 부부싸움만 하면 지방대 사범대학을 운운할 때마다 12.12군사반란만 아니었으면 아빠는 서울대는 아니더라도 서울땅에 있는 대학은 갔을 거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세상이 영악해도 너무 영악해지고 있다. 부모의 직업과 경제력이 학생 순진무구하고 동심이 가득 찰 나이에 기성세대의 흙탕물이 영혼 위로 흘러간다. 음란물 그림에 학급 친구의 얼굴을 바꿔치기하는 세상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