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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계절. 465

보고 싶은 할아버지

by 함문평

할아버지는 1995년 12월 12일에 돌아가셨다. 요즘이야 초급 장교들도 칼같이 휴가를 가지만 그 시절 보통의 장교는 혹시 휴가 갔다가 상관이 근무 평정에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자라고 쓸까 봐 겁나 휴가를 못 갔다.


장손이 보고 싶은 마음에 일본 강점기 시기부터 해방 정국 할아버지 목격담을 쓰신 노트 몇 권을 전방 관사로 가지고 오셨다.


할아버지 생존 시에 발표하면 할아버지가 기관에 잡혀간다고, 사후 30년이 되면 책으로 발간하라고 하셨다.


모처럼 할아버지가 오셨기에 철원 땅굴과 백마고지를 구경시켜 드렸다.

그리고 12월 12일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유품을 소중하게 보관했다. 1998년 전방에 비가 엄청 내렸다. 관사가 반파되어 부대 내 교회로 피난 갔다.

피난에서 돌아오니 가관이었다. 흙탕물에 집안 살림살이는 거의 못쓰게 되었고, 학생시절 앨범이 다 망가졌고,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장손이라고 아버지 형제자매 건너 주신 할아버지 인생이 담긴 문집이 흙탕물에 글씨를 알아볼 수 없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은 한강에 다리가 25개 넘으면 통일이 될 거라고 하신 대목이다.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은 우리나라 상층부 3% 부자에 해당하는 친일파 후손과 북한 인구 1%인 김일성 백두혈통과 그들을 결사옹위하는 1%의 빨치산 후손이다.

할아버지 문집은 사라졌지만 유년시절 들은 이야기로 할아버지 소천 30주년 기념 소설을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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