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도 모르는 잡놈들이 설칠 30년 후
할아버지는 조선의 마지막 세대 선비였고, 마지막 훈장이었다. 시골에서 그럭저럭 운영하던 서당이 박정희 대통령이 국한문 혼용을 한글 전용으로 만드는 바람에 서당 수강생이 0이 되었다.
일본강점기에 아편으로 번 돈을 금으로 조선땅에 가지고 와서 금을 팔아 한우 99마리를 이 집 저 집 나누어 위탁 양육을 하고 치부책에 기록했다.
암소는 송아지가 태어나면 송아지를 길러준 양육비로 주고 어미소는 팔고 중송아지를 사서 다른 양육자에게 양육시켰다.
큰 소를 팔아 작은 종송아지를 사니 돈이 남았기에 할아버지는 서당 학동이 0이 되어도 눈도 꿈쩍 안 하셨다. 남에게 나쁜 짓 안 하고, 장손만 제대로 잘 교육시키면 함 씨 집안 대대손손 이어진다는 것이 할아버지 생각이었다.
박정희를 다카키 마사오로 폄하 부르는 것은 실제로 만주서 간도특설대 놈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기에 민주공화당 횡성조직책 아버지를 아들이지만 아들로 치지 않고, 한심한 놈이라고 장손은 절대 아비를 닮지 마라고 했다.
정말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처럼 담배 두갑도 안 피우고, 학생시절 수학여행 가서 다들 포커, 고스톱 쳐도 나만 혼자 여관방 한구석에서 삼중당 문고판 소설을 읽었다.
골 때리는 현상은 유전이 한대 건너 유전이다. 할아버지는 돌다리도 두들기고 학구파다. 할아버지 방은 책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였다. 나도 학생시절 책이 들어오는 문을 제외한 ㄷ 자 방이 전부 책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손자요 나의 아들이 회사 연봉은 연봉이고 포커대회 나가면 금, 은, 동을 교대로 한다. 크산티페가 처음에는 말리더니 상금 천만 원 타면 세금 33% 제하고 받은 돈의 10%를 아들이 주니 돈에 물들어 아들 포커대회 나간다고 하면 김밥을 싸준다.
반대로 아버지는 음주가무 주색에 능했다. 할아버지 소 99마리 중에 중1부터 고3까지 6년과 재수, 삼수 총 8년간 24마리 소를 팔아 공부했는데, 나머지 75마리는 아버지가 도박으로 다 날렸다. 그래서 내 아래 두 여동생과 두 남동생 중 한 명은 대학을 아예 원서도 안 냈고, 3명은 힘들게 고학을 했다.
과외와 아르바이트까지. 지금도 설, 추석에 만나면 나를 지탄한다. 우리 집 자식은 장손뿐이라고. 야, 나를 뭐라고 하지 마라.
난 장손이라 할아버지가 챙겨준 것이고 아버지가 할아버지 소를 도박으로 다 날려 니들이 고생한 거 알지만 내가 욕들을 일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 중에 내 죽고 30년 후에는 나라에 큰 변고가 올 것이다. 천자문도 안 읽은 쌍것들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 것이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해가 1995년이다. 올해가 30년이다.
장손은 절대 정치판에 끼어들지 말고 고고한 학자의 길을 가거나 인민들을 정의롭게 각성할 문필가로 남으라고 하셨다. 김앤장 서석호가 언론에 회자 되는 것을 보니 할아버지가 만주서 비적소리 들었고, 조선에 법비들이 나라 망칠 거라 하셨는데, 올해가 그해인 모양이다.
이런 법비를 키운 것이 인민들이다. 사법고시 합격하면 20대 새파란 판사 놈에게 영감님, 영감님으로 호칭하는데, 그것부터 판사님 또는 판사로 호칭해야 한다. 그렇게 부르는 것 역시 일본강점기 조석의 식민지 친일문화다. 조희대는 이틀 만에 100만 명 서명이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작가도 1/100만 역할을 했다.